[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2) 괴짜 창업자, 社訓도 '재밌고 엉뚱하게'…'모난 직원' 더 우대
휴양지인 일본 시가현 다카지마시에 있는 호리바제작소 연수원.건물 외관은 영락없는 '리조트 호텔'이다. 칙칙한 분위기의 일반적인 연수원과는 거리가 멀다.

운영방식도 많이 다르다. 연수의 90%는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회사에서 시켜서 하는 연수가 아니다. 연수 주제도 직원들 스스로 정한다. 연수원 이름도 그냥 '펀 하우스(Fun House)'다. 밤새 술 마시고 노래 불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개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교토 기업 중에서도 가장 튀는 회사가 호리바제작소다. 사훈부터가 '재밌고 엉뚱하게'다. 이 회사는 배기가스 수질 대기 혈액 등의 성분을 분석하거나 계측하는 기계를 만드는 벤처기업이다. 1945년 창업 이후 분석 · 계측기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공의 원동력은 창업자인 호리바 마사오 최고고문(85)의 벤처정신이다. 호리바 최고고문은 직원들에게 "재밌게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못 당한다. 엉뚱한 발상을 해야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창의적 제품이 나온다"고 늘 강조한다. 펀 하우스는 이런 창업자의 벤처정신을 직원들의 머리에 세뇌(?)시키는 '메카'다.

◆튀어야 산다

호리바 최고고문은 교토대 물리학과 3학년 재학 중 회사를 만들었다. 학생이 창업하는 것 자체가 튀는 행동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처럼 튀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1961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63년 심폐기능 측정기 개발에 성공했다.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일본의 의학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킬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어느 날 통상산업성(현재 경제산업성) 산하 연구기관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심폐기능 측정 기술을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에 응용하자는 것이었다.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더러운 배기가스를 측정하는 데 쓰려고 만든 제품이 아니란 이유에서였다.

얼마 후 그는 공장을 둘러보던 중 한 직원이 심폐기능 측정기를 배기가스 측정기로 개조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호리바 고문(당시 사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장이 거절한 연구를 몰래 숨어서 하다니,당장 그만둬." 그 사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왜 사원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를 못하게 하죠?" 말문이 막힌 호리바 고문은 마지못해 연구를 허락했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그렇지 않으면 연봉을 깎을 거야."

이때 개발된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장치는 지금 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이 제품을 개발한 오우라 마사히로는 1978년 호리바제작소의 2대 사장이 됐다.

'교토식 경영' 자세히 보려면 ▶hankyung.com/hot/kyoto

◆끊임없이 소통하라

[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2) 괴짜 창업자, 社訓도 '재밌고 엉뚱하게'…'모난 직원' 더 우대
호리바제작소 교토 공장 자동차계측시스템 생산부 유리창 너머에는 '호리바 블랙잭 상(賞)'이란 상장이 진열돼 있다. 블랙잭 상이란 매월 혁신 활동을 가장 잘 수행한 팀에 주는 상이다. 이 부서는 제품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전기사용량을 줄인 공로가 인정돼 2007년 12월 이 상을 받았다고 한다. 특이한 건 개인이 아니라 팀이 수상자라는 점이다. 한 직원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팀원이 힘을 합쳐 성과를 냈기 때문에 팀이 수상했다고 한다.

사이토 주이치 사업전략실 실장(이사)은 "회사 내에 '스타'는 없지만 '스타 팀(team)'은 있다"며 "명문대학 출신 천재는 없지만 평범한 대학 출신들이 팀워크를 발휘해 천재 한 명이 해내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해낸다"고 말했다. 조직원 간 협력이 활발한 것은 연수활동 등을 통해 팀 구성원 간,팀 간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활동은 생산부서 설계부서 개발부서 등이 협력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소통은 국경을 넘나든다. 현재 호리바제작소 그룹의 전체 5200여명 직원 중 3100여명(60%)이 외국인이다. 언어와 피부색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호리바제작소는 매년 해외 각사 임원 40~50명을 연수원으로 불러 세미나를 개최한다. 호리바 기업문화를 그룹사에 전파하고,그룹사 간 · 사업영역 간 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창업자의 장남인 호리바 아쓰시 사장(61)은 언론 인터뷰에서 "하나의 기업문화 아래 전 세계 계열사가 뭉치는 원 컴퍼니(one company)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며 "국경과 사업부를 떠나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소통은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호리바제작소는 매월 직원 생일파티를 연다. 여기엔 생일을 맞은 직원 100여명에 최고고문과 사장까지 참석한다. 그러나 중간 간부들은 참석할 수 없다. 직원들이 상사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끝날 땐 최고고문과 사장이 일일이 사원들과 악수하면서 "수고했다. 잘해보자"고 격려한다.

◆상대가 M&A 요청한다

호리바제작소는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원천기술을 본사에서 개발하고 통제하는 일반적인 일본 기업과 다른 점이다. 1996년엔 프랑스 의료기기 회사를 인수해 의료분야를 강화했다. 이어 1997년엔 프랑스 반도체 회사를,2005년엔 독일 회사의 자동차 계측 관련 사업부를 사들였다.

그런데 한 번도 호리바제작소가 먼저 인수를 제안한 적이 없다. 상대방이 먼저 인수해 달라고 제안해서 M&A가 이뤄졌다. 인수한 회사는 거의 대부분 호리바제작소에 납품을 하거나 합작회사를 만들어서 같이 일을 해본 회사다. 이런 회사들이 호리바제작소의 기업문화에 반해 자회사로 편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이 왔다고 해서 모두 인수하는 건 아니다. 우선 원천 기술이 없으면 인수대상에서 제외한다. 원천기술이 있더라도 기업문화를 공유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인수를 포기한다.

교토대 스에마스 지히로 교수는 "전 세계로부터 우수한 인재를 흡수해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신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게 호리바제작소의 강점"이라며 "교토 기업 중에서도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교토=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