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적의 루프트한자 여객기 LH719편이 20일 오후 1시16분께 인천공항을 이륙한 데 이어 아시아나항공도 이날 오후 10시15분 오스트리아 빈행 화물기 운항을 재개,막혔던 유럽 하늘길에 한 줄기 혈로가 트이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뮌헨지역이 유럽에서도 비교적 남부쪽에 위치해 기상상황이 좋아졌고 공항 통제도 해제돼 운항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LH719편에는 뮌헨과 하노버에서 열리는 건축박람회와 산업박람회에 참가하려는 한국 기업인 등 221명이 탑승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대한항공은 안전을 이유로 운항 재개 결정을 미루고 있지만 수출 기업들은 화산폭발 사태가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6일째 수출화물이 쌓여 있어 항공편을 통한 수출이 정상화되려면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살짝 열린 유럽 하늘길

아시아나항공은 유럽 일부 영공과 공항이 개방됐다며 이날 저녁 화물기 운항 재개를 전격 결정했다.

21일부터 인천~프랑크푸르트,인천~파리 노선에 한해 여객편도 띄우기로 했다.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는 정기편 외에 21~23일 매일 1회 임시편을 투입할 예정이다. 임시편은 인천에서 18시30분 출발해 프랑크푸르트에 23시30분 도착하는 일정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다음날 01시30분 출발,인천에 18시50분 도착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프랑크푸르트,파리 공항관제시스템을 통해 20일 15시에 공항 개방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런던 노선은 조만간 운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대한항공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황명선 대한항공 한국지역본부장은 "안전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며 "공항이 열렸더라도 항공사마다 안전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이틀 정도면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운항 중단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없음을 내비쳤다. 대한항공은 20일 오전 6시께 유럽 노선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이 유럽~인천 노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다. 지난 15일부터 이날까지 두바이를 제외하고 런던,파리,프라하,프랑크푸르트,빈,취리히,로마,밀란,마드리드,이스탄불,카이로,텔아비브 등으로 향하는 여객,화물기의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휴대폰 등 현지 재고 조만간 바닥

유럽 항공길이 조금씩 열리면서 그동안 적체됐던 화물을 어떤 순서로 처리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당일 예약한 고객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이날 빈으로 출발한 화물기엔 해당 시간대에 예약한 화물만 실렸다는 얘기다. 여객에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한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은 임시편의 경우 15~20일 운항 중단으로 비행기를 못 탄 승객들만 태우기로 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수출업체들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유럽에 보내려던 휴대폰 등 수출 물량을 일부 북미 시장쪽으로 돌렸다"며 "유럽 국가 내 공급 지연으로 발생한 시장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16~20일 총 1048t의 반도체,휴대폰,LCD TV 등 주력 수출품을 창고에 쌓아놓고 있다. 무역협회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손해 규모가 이날까지 1억4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했다.

KOTRA가 유럽 진출 기업 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반도체 수출 업체 A사는 "반도체 호황으로 공장을 풀가동하는 상황에서 항공대란이 발생해 하루하루 손실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스페인,북아프리카 등을 통한 내륙 운송 등의 차선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헝가리에서 휴대폰을 판매하는 B사는 "현지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노키아,지멘스 등 경쟁사들이 치고 들어오는 데다 공급 지연으로 시장 신뢰도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삼성,LG전자의 경우 인기 휴대폰 모델의 재고를 이미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 출장 간 기업인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유럽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17~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철강협회 이사회에 참석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두바이로 우회하는 항공편으로 이날 오후 귀국했다. 상장을 앞두고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섰다가 5일간 영국에 고립됐던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은 고속열차 등을 이용해 영국을 벗어났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