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소신껏 정책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관료들도 시장과 정부의 변화를 바로 읽고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립 해야 합니다. "

30대 국장 · 40대 차관을 거쳐 장관을 여섯 번이나 해 '직업이 장관'으로 통했던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현 삼정KPMG 회장).그는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후배들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밤 늦도록 일 하는 공직자들이 많은데도 국민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손가락질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공직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갖고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료 사회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경제관료의 70%가 민간 이직을 심각히 고민했다는 한국경제신문 설문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공무원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살게 하느냐'는 분명한 목표와 소명의식이 있었죠.자부심도 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장 · 차관 한다 해도 누가 존경을 하나요. 흠집 내기 바쁘죠.그러다보니 초임 사무관들조차 장래에 대한 비전이 없습니다. 공직자로서 모티베이션(동기)이 없어지는 거죠.능력개발도 안되고,성취감도 없고,경제적으로도 부족하고….국가 경제를 책임져야 할 인재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지요.

"개인적으론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원인 제공자 중 하나라고 봅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은 인재가 많아서 부럽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뀜에도 매번 채워줄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사실 아주 시니컬(냉소적)한 말입니다.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꾼다는 것이죠.리 총리는 그러면서 '싱가포르는 가장 우수한 인재를 공무원으로 쓴다. 청렴을 전제로 처우를 파격적으로 해주고 한 번 임명하면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키운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1년 이상 한 자리에 있는 국장들이 얼마나 됩니까. 자기 임기동안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람을 자주 교체하다보니 관료 수명이 짧아지고 결국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

▼젊고 유능한 관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나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시대가 바뀌었고 민간 경험을 쌓는 게 오히려 공무원으로서 도움이 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공무원들은 소위 '을'의 입장을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해요. 서기관이나 과장 때 민간으로 나가 경험을 쌓고 정부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임태희 노동부 장관 같은 성공 사례가 있잖아요. "

▼국가관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치논리가 간섭한다고 원칙을 포기해선 안돼요. 장 · 차관이 영혼을 팔면 나라 망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 앞에서도 '아닙니다'라고 얘기하는 배포가 있어야 합니다. 일부에선 '위에서 뭘 좋아할까'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그런 사람은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어요. 공무원은 기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정부부터 자꾸 정치권과 연결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진짜 걱정을 하고 있어요. 공직자는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혁신으로 역량을 키워가야 합니다. "

▼사기를 어떻게 높일 수 있습니까.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고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관들은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맡은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들이 어떤 자기주장을 펼치더라도 장 · 차관들은 언로(言路)를 열어주고 오히려 격려해줘야 합니다. 또 중급 이상 관료들에게는 자기 분야에서 권위를 갖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

▼앞으로 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제관료들이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합니까.

"이른바 잘 나간다고 할 때 쿨(cool)해야 합니다. 가야할 길은 아직 멉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엄청난 변혁이 몰아닥칠 것입니다. 남북문제도 그렇고요. 성장률이 1% 더 좋아지느냐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경제가 아시아 주변 열강의 견제를 딛고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너무 쉽게 차가워지는 습관이 있어요. 이걸 버려야 합니다. "

글=정종태/사진=신경훈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