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은 이번 정부 들어 2년 남짓 동안 명함을 3번 바꿨다. 참여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으로 있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가급 · 옛 1급 관리관)으로 승진했다. 1년 뒤인 지난해 2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0개월 뒤 부위원장으로 올라갔다.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가급)도 비슷하다. 2년간 보직이 3번 바뀌었다.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1년,증권선물위원으로 10개월을 근무한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권 부위원장의 인사궤도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김 사무처장은 1983년 총무처 수습행정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5년 금감위 홍보관리관으로 국장이 될 때까지 22년을 일했다. 꽤 긴 기간이다. 하지만 국장이 된 뒤부터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1년간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2007년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 가급까지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년에 불과했다. 금융위 사무처장과 증권선물위원 등 가급 자리도 3명이 번갈아 맡았다.

'경제부처 고위직의 초단기화'는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다. 재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2년여 동안 차관만 5명을 '배출'했다. 1차관은 최중경 경제수석(7개월),김동수 수출입은행장(6개월)에 이어 허경욱 현 차관이 세 번째다. 2차관은 배국환 감사위원에 이어 지난해 2월 임명된 이용걸 현 차관이 맡고 있다. 핵심보직 중 하나인 세제실장(가급)은 이희수 국제통화기금(IMF)이사가 6개월 만에 윤영선 관세청장에게 물려줬고,지금은 공석이다. 경제정책국장은 임종룡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육동한 총리실 국정운영 1실장을 거쳐 지난해 2월 윤종원 현 국장으로 3번 갈아탔다.

지식경제부도 예외가 아니다. 핵심국장 자리인 산업경제정책관은 정재훈 국장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네 번째다. 조석 성장동력실장(재임 11개월)과 윤상직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6개월),이관섭 에너지산업정책관(5개월)이 거쳐갔다. 기후변화에너지정책관도 3번 교체됐다.

경제부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장과 가급 고위 간부들의 재임기간이 짧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경부 관계자는 "핵심보직의 경우 승진 코스로 인식돼 자주 바뀌다보니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핵심 과장 자리도 비슷한 이유로 자주 바뀐다. 금융위 금융정책과장과 은행과장도 이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관료들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이나 산하기관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경부의 에너지 관련 산하기관 관계자는 "국장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고 산업계 이슈도 다시 설명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은 이력서에 여러 경력을 써넣을 수 있어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피곤하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고위직 공무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정부에서 정무직을 꿰찰 수 있는 행정고시 '커트라인(cut line)'이 어느 선까지 내려올 것인가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기수를 가늠해 보면서 경력을 관리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산하기관장으로 이동하는 길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좁아진 상황에서 '가급 타이틀'이라도 달아준 뒤 내보내려다 보니 재임기간이 짧아진다는 설명도 있다. 금융회사로 옮긴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지금의 경제부처 가급자리는 짧은 기간 동안 서로 돌아가면서 골고루 나눠먹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직에 인생을 바친 후배들에게 무턱대고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재정부의 고위직 인사는 재정부 장관이 감당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고위직 경력관리 인사가 '정책의 단기화'로 이어져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가 소홀히 취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경제부처의 과장급 간부는 "새로 부임한 국장은 무조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성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과제를 올리면 '좀 간단한 걸로 가자'는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단기간 내에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길더라도 6개월 안에 승부가 나는 정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급정년제 등 인사시스템에 경쟁 원리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장,부이사관 등 직급별로 승진심사에서 일정 비율을 탈락시키고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자는 것이다.

한 전직 장관은 "2년 이상 한 자리에 있는 국장들이 드물다보니 경험 축적이 안 되고 자기 전문성과 연관된 분야의 시너지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며 "이로 인해 관료들이 정체되고 틀 안에 갇혀 발전을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만큼 근본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심기/정종태/주용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