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들이 겪는 대표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관치(官治) 논란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지난해 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지위에서 사퇴했을 무렵 금융당국 압력설이 불거진 것이 단적인 예다. 국민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논란의 빌미가 됐다. 금융당국은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시장에선 의혹을 거두지 않는다. 앞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퇴진할 때에도 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기획재정부 차관이 올해부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열석발언권(의견개진)을 행사하는 것도 관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엄연히 법에 명시된 권리이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한은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옛 상공부(1948~1993년)시절 막강한 인허가권을 쥐고 재계를 흔들던 지식경제부 고참 관료들도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절감하고 있다. 초임 사무관 시절 석유과에 근무했던 한 지경부 국장은 "당시 정유사 직원들이 매일같이 사무실을 기웃거렸는데 요즘은 아니다"며 "지금은 타부처에서 '너희가 기업 앞잡이냐'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경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규제 권한을 포기했고 지금은 '규제부처'라기보다는 산업 발전을 독려하고 자극하는 '진흥부처'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에 맞춰 경제 관료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의 중심축이 '관'에서 '시장'으로 옮겨갔는데 과거 추억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정부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정부의 한 과장은 "과도한 규제완화와 시장만능주의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시장을 방치해두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 원리를 존중하면서 건전한 심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