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들이 흔들리는 것은 박봉과 인사 적체,퇴직 후 진로 불투명 같은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처우 불만이나 퇴직 후 거취 문제를 빼놓을 수 없지만 일상 업무에서 경제관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중 하나는 소신껏 처리한 일이 나중에 문제가 돼 책임을 지거나 불명예를 뒤집어 쓸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게 단적인 예다. 변 전 국장은 재직 중이던 2003년 외환은행의 자산을 일부러 낮게 평가하고 부실자산을 부풀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에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2006년 6월 기소됐다. 재경부 시절 소문난 에이스 관료였고 민간에 나와서는 사모펀드 대표를 맡아 주목받던 그였지만 검찰 기소로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국가 자산을 헐값에 매각한 매국노','뇌물을 받아먹은 파렴치범'이란 멍에가 씌워졌고 법정구속까지 당하는 신세가 됐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2008년 11월 1심과 작년 12월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본인은 물론 그를 아는 경제관료들의 정신적 쇼크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관가에선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까지 유행했다. 공무원의 정책 결정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것을 목격한 관료들 사이에서 '나중에 문제될 일은 아예 하지 말자'는 보신주의가 퍼졌다. 한 경제관료는 "과거에 비해 사회계층이 다양해지면서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며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결정은 서로 책임지지 않고 떠넘기려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공무원에 대한 '외부의 편향된 시선'도 경제관료들의 사기를 꺾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신은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고 자부하는데 밖(민간)에선 여전히 '폼 잡는 공무원'쯤으로 치부할 때 기운이 쭉 빠진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6시에 칼퇴근하니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낮에는 업무보고에다 간담회에 불려다니고 민원인 상대하느라 바쁘고 밤 늦게서야 보고서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는데 밖에선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