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은 내부 경제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북한 지도부는 당초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통해 시중에 과다하게 풀린 돈을 회수하고 사회주의식 분배 체제를 강화하려 했지만 화폐개혁은 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물가 폭등을 유발시키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이에 당황한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실패로 끝난 화폐개혁

북한 관영 매체인 조선신보에 따르면 작년 11월30일 전격 시행된 화폐개혁의 핵심은 구권과 신권의 교환이다. 교환 비율은 100 대 1로 정했으며 가구당 10만원(구화폐 기준)까지만 바꾸도록 했다. 교환 기간은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단 일주일이었다. 이 기간 내 바꾸지 못한 돈과 비합법적으로 다른 나라에 나가 있는 돈은 일체 무효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현금을 갖고 있던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고 결국 가구당 교환금액을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해주는 등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국영 상점의 공급 능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주민들이 자체 생산한 물품을 예전처럼 선뜻 시장에 내놓지 못해 구매력 약화에도 불구,오히려 물가는 폭등했다.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화폐개혁은 과잉화폐를 흡수해 시장가격을 안정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분명히 실패했다"며 "북한 경제가 그만큼 생산력이 취약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심화되는 식량난과 에너지난

북한의 현재 인구는 약 2300만명으로 남한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주민이 연간 필요한 최소 식량은 528만t.하지만 생산량은 평균 403만t에 그치고 있다. 매년 125만t가량이 부족하다. 북한이 식량 수급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 등에 기댈 수밖에 없다.

에너지난도 북한 경제를 옥죄는 요인이다. 주된 원인은 석탄 생산 감소다. 2007년 기준 북한의 전체 1차 에너지 가운데 석탄과 수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5%가 넘는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석탄 생산량은 2506만t으로 1990년에 비해 24.4% 감소했다. 외부에서 전량 수입해야 하는 석유도 고작 388만배럴만 도입돼 1990년보다 79% 격감했다. 김미덕 일본 다마대 교수는 "한국은행은 북한의 200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065달러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50~200달러에 불과하다"며 "이는 베트남의 4분의 1 수준이고 미얀마(219달러)보다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 기대는 북한

북한의 무역적자는 1998년 3억2400만달러를 기록한 후 2008년 15억550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지향하는 북한은 내수를 위해 수출이 아닌 수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날로 증가,그 비율이 1999년 25%에서 2008년엔 73%로 확대됐다. 중국은 북한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작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방북할 당시 중국은 북한에 총사업비 12억6000만위안(약 2100억원)에 달하는 압록강대교 무상 건설,2000만달러 규모의 식량 · 에너지 원조 등을 약속한 바 있다. 경제난 타개 등을 위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지원을 이끌어낼지 주목되고 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