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전단지를 들고 부산 곳곳을 돌며 백과사전을 팔던 영업맨은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오너 경영자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1980년 7명으로 시작된 작은 학습지 출판사는 15개 계열사,1만여명을 거느린 국내 재계 서열 34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올해 매출은 5조5000억원을 바라보게 됐다. 30년 전 남대문로 대우빌딩의 한 귀퉁이 사무실에서 닻을 올린 윤석금 회장(사진)의 웅진그룹 얘기다.

웅진그룹이 오는 4월1일로 창립 30년을 맞는다. 어느덧 주력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비롯한 대부분 사업이 업종 선두권에 올라서며 안정된 대기업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웅진그룹의 혁신활동은 오히려 올해 들어 강도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전 그룹사가 구분을 파괴하고,상식을 비틀며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창조적 발상이 지난 10년을 이끈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금융위기가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을 수 있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윤 회장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정수기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시도한 '렌털제'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웅진코웨이를 업계 정상에 올려났고,이듬해 누적되는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로 던진 쌀 음료 '아침햇살'은 웅진식품을 단숨에 흑자로 돌려놨다. 렌털제와 아침햇살에서 발아된 혁신의 DNA는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지난 10년간 그룹 전체로 퍼져나갔다. 렌털시스템은 웅진코디,페이프리,하트 서비스 등과 결합하면서 영향력을 배가시켰고 아침햇살의 성공신화는 '초록매실','자연은'으로 이어지며 연타석 홈런을 양산했다.

웅진그룹은 지난해부터 그룹의 무게중심을 생활가전과 교육에서 환경과 에너지로 옮겨가며 제2의 '렌털제'와 '아침햇살'을 찾고 있다. 윤 회장의 지난해 말 파격 인사는 올해 혁신 경영의 고삐를 죄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사상 최대폭인 25명의 임원을 승진시키며 40대를 전면에 배치하고,이주석 전 김앤장 고문을 총괄부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외부 수혈에도 과감히 나섰다.

올해 웅진그룹의 혁신 시도는 그 형식 측면에서는 경쟁과 협업으로,그리고 내용 측면에서는 재미와 내실을 아우르며 다양하게 전개된다. 웅진코웨이는 온라인 제안제도인 '상상오션'으로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다.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제출할 때마다 포인트로 새우(마리당 100원)를 지급하고 새우가 1만개 모이면 돌고래를 지급한다. 돌고래를 잡게 되면 해외연수의 기회가 주어진다. 임직원들의 새우잡이는 경쟁이 붙어 1주일에 40~50건씩 제안이 쏟아진다. 여기서 나온 제안으로 최근에 생산라인 개선을 통해 연간 3억5000만원의 인건비를 절감하고,신제품 개발 기간을 10% 이상 단축시키기도 했다.

웅진씽크빅은 매주 수요일을 홀릭데이(Holic Day)로 정해 오후 4시부터 6시30분까지 '업무를 금지'하고 있다. 자신의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체험하고 연구하는 개인 혁신활동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이노오션은 10%의 엘리트급 인재를 뽑아 기존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1년간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고 혁신 과제가 채택되면 그 프로젝트의 매니저가 돼 자신이 직접 조직을 꾸린다. 3개월간 운영된 프로젝트 기획안을 갖고 성과발표회에서 경매에 붙이면 각 사업본부에서 경쟁 입찰을 통해 프로젝트를 따낸다. 지금은 19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웅진그룹은 웅진씽크빅의 글로벌체험 프로그램인 브라보(BRAVO),웅진식품의 글로벌 혁신 TF(태스크포스팀)인 윈팀(Win Team),웅진케미칼의 혁신 기업문화 캠페인인 '이노펀(Inno-Fun) 2010',극동건설의 혁신과제 도출 조직인 '아이캔(I-Can)팀'과 '위캔(We-Can)팀',웅진코웨이의 해외 선진기업 벤치마킹 프로그램인 '와(WAA)' 등을 통해 그룹 전체에 변화의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이달 초에는 윤 회장을 비롯한 사장단이 단체로 일본 교토를 찾아 창의경영으로 유명한 호리바제작소와 교세라 등을 둘러보고 현지에서 사장단 회의를 가졌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윤 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혔듯 새로운 도전자들에 맞서 앞으로 30년간 지탱하고 성장하기 위한 해법을 끝없는 혁신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