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새 타이틀은 그룹 회장이 아닌 삼성전자 회장이다. 실질적으로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게 될 이 회장이 계열사 수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인 이인용 부사장은 "그룹의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삼성그룹 대표회장이라는 직책이 없는 만큼 그룹에서 맏형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를 맡게 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연결기준으로 136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룹 외형의 절반 이상을 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그룹 대표 회사인 삼성전자 회장이 그룹 전제를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동일인'

국내 기업 총수들의 일반적인 호칭인 '그룹 회장'은 법적 효과가 있는 직함이 아니다. 회사를 규율하는 기본법인 상법은 개별 법인에 대해 규정하고 있을 뿐,기업집단(그룹)을 직접 다루지 않고 있다. 그룹에 관한 규제 사항을 담은 공정거래법에도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핵심 인물이나 법인 그 자체를 일컫는 '동일인'이라는 용어를 쓸 뿐 '총수'나 '회장'이란 말은 없다. 이 회장은 공식적으로 2008년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뗐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그를 '동일인'으로 분류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는 모양새를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삼성그룹 회장으로 복귀한 것"이며 "전경련 등 재계도 그룹 회장에 합당한 예우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대표이사 맡을 듯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예전처럼 '대표이사' 직을 갖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2008년 4월22일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이 회장이 물러날 때 직함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이었다.

대표이사를 달지 못한 것은 얼마 전에 삼성전자 주총이 마무리되면서 이사회-주총으로 이어지는 선임 절차를 밟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영복귀가 삼성 특유의 촘촘한 스케줄 관리 없이 급박하게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내년 주총에선 이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다시 맡게 될 것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법적 권한과 책임을 갖는 대표이사를 맡지 않은 상황에서 완벽한 경영복귀를 했다고 볼 수 없는 데다 구태여 대표이사직을 거부할 이유도 없어서다. 따라서 순수한 법률적 측면에서 이 회장의 경영복귀는 내년 주총 때까지 한시적으로 유보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회장 직책이 갖고 있는 이런 성격은 향후 그룹 컨트롤타워의 성격과 역할을 정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가 아닌 회장직을 보좌하는 조직의 권능에 일정한 제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3실이라는 조직 가동을 선언해 놓고 구체적인 조직운용 방향을 선뜻 밝히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삼성 내부적으로는 이처럼 모호한 법적 지위가 전혀 문제될 일은 아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