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버리는 게 반이었어요. 몇 번 해보니 기술이 늘어 모자 한두 개쯤은 앉은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냅니다. "

황화동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차장은 요즘 뜨개질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털실과 뜨개질 바늘을 회사로 챙겨오는 날까지 있을 정도다. 황 차장이 만들고 있는 것은 신생아용 모자.재미가 붙어 한 개,두 개 만들다 보니 어느덧 완성한 작품이 22개로 늘었다. 황 차장의 모자뜨기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국제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이 벌이고 있는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기증하기 위해 모자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에 불고 있는 모자뜨기 열풍

모자뜨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은 황 차장만이 아니다. 2008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시작된 모자뜨기 캠페인에는 몇 달 새 1000명의 직원이 참여했다. 그 해 총 1560개의 털모자를 만들어 세이브더칠드런에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사업부를 포함한 전 사업부서로 참가자들이 확대됐다. 캠페인 참가자는 4700명으로,전달한 털모자는 8500개로 늘어났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기증한 모자는 아프리카 말리에 전달한 전체 모자(8만460개)의 10%가 넘는다.

아프리카는 기온이 높은 지역이지만 아침 저녁 일교차가 심한 편이다. 이 때문에 매년 많은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2006년 발행된 어머니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200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날 사망한다. 태어난 지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 아기를 합하면 사망자 숫자는 400만명으로 늘어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원을 집중하고 있는 말리의 경우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이 나라의 사망률은 19.6%에 달한다. 털모자만 있어도 사망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게 세이브더칠드런의 설명이다.

◆자녀 교육에도 도움

삼성전자 직원들은 작은 정성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자발적으로 뜨개질 모임을 만들었다. 다 함께 모여 움직여야 하는 활동은 시간적인 제약이 많지만 모자를 뜨는 것은 각자 개인의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어 부담이 적다는 점도 고려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삼성전자 직원들은 봉사활동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모자뜨기만한 가정교육이 없어요. " 12살 아들을 둔 생활가전사업부 신은경 과장의 말이다. 17개의 모자를 떠 세이브더칠드런에 기증한 신 과장은 "아이에게 아프리카 아이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 앞에서 뜨개질을 한다"며 "튼튼하게 자라라고 아프리카 신생아에게 카드를 쓰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며 이것보다 좋은 교육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가족들과의 관계가 개선됐다는 직원도 있었다. LCD사업부의 한 차장급 직원은 "아이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며 자기들도 해보겠다고 해서 직접 뜨개질을 가르치고 있다"며 "매일 밤 털뭉치를 앞에 놓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들과의 관계가 한층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초보 남자 직원 위해 뜨개질 강좌 개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전문 강사를 초빙해 뜨개질 강좌를 열었다. 캠페인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난생 처음 뜨개질을 하는 남자 직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회사 관계자는 "뜨개질 실력이 부족해 밤을 새워도 모자 한 개를 완성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교육 후 뜨개질 전문가로 변신했다"며 "매년 정기적으로 뜨개질 강좌를 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는 모자뜨기 캠페인과 관련된 글들이 가득하다. 그만큼 이 캠페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직원들이 많다는 뜻이다. "내가 뜬 모자를 쓰고 있는 아기 사진을 보고싶다","평소 아이들한테 목도리나 조끼를 많이 떠주었는데 이번에 아프리카 신생아를 위해 모자를 뜨며 새로운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개인적인 취미나 특기를 뽐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등이 게시물의 주요 내용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모자뜨기 캠페인이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트렌드를 바꿨다고 설명한다. 사회공헌 파트 관계자는 "기부금을 거둬 모자를 구입하는 게 훨씬 손쉽지만 봉사하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며 "모자뜨기와 유사한 성격의 사회공헌활동을 더 발굴,전사 캠페인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