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도쿄.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우연히 '모리타'라는 문패가 붙어있는 이발소에 들렀다. 40대의 주인이 호암을 맞았다.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까?" "제가 3대째입니다. 60년쯤 되나 봅니다. 아들이 계속 가업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만…." 호암은 이발사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2차대전 패전으로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담담하게 다음 세대를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암은 모리타이발소를 통해 비로소 일본 기업들의 모습을 봤다. 도쿄의 과자 제조사인 도라야는 1592년 개업,400년 가까이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마쓰이라는 건설회사는 1586년 설립된 기업이었다. 호암은 이 일을 계기로 경영자는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삼성 창업세대 임원들은 이 시기에 호암의 머릿속에 '품질 제일주의'와 '시스템 경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1965년 받은 국제인증

제일모직은 '품질 경영'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창업 초기부터 제품의 질을 철저히 관리했다. 1965년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 국제 품질인증을 받았다. 국제양모사무국이 우수한 모직물을 뜻하는 '울 마크(wool mark)'의 사용을 허가한 것.1968년에는 무결점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모든 삼성 계열사로 퍼져나갔다. 1979년 지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곳곳에도 호암의 완벽주의자적 기질이 드러난다. 이 호텔 일식당에는 다른 곳보다 긴 구둣주걱이 비치돼 있다. 벽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노인들이 구두를 신을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호암은 신라호텔을 짓기 5년 전부터 일본의 유명 호텔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직접 시장을 조사했다. 각 호텔의 지배인을 불러내 방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침대는 어디서 구입했는지 등을 꼼꼼히 물었다. 심지어 객실의 손잡이 장식 모양까지 직접 챙겼다.

◆메모의 힘

호암의 꼼꼼함은 제일모직을 창업할 때 기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일모직은 미국에서 얻은 차관으로 독일과 이탈리아,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을 선별해 도입했다. 호암의 수첩에는 모직공장 건설에 필요한 온도 습도 등 기상 조건에서부터 필요한 노동력 등 48개 항목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모든 조건을 검토한 뒤 개별 기계의 발주사를 정한 것이다.

이 메모는 미국의 모직기계 제조업체인 화이팅사의 임원이 "미국 원조 달러로 왜 유럽 기계를 사느냐"고 항의했을 때 빛을 발했다. 호암은 아무 말 없이 메모를 내밀었고,미국 임원은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조직과 일정 관리도 철저한 계획 아래 이뤄졌다. 그의 수첩에는 그날 챙겨야 할 일,알아봐야 할 일,만나봐야 할 사람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퇴근 무렵이면 메모된 내용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날 계획을 작성했다. "현대 경영학은 한 조직의 리더가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의 한계를 30명으로 본다. 하지만 선대 회장은 100명 정도를 관리했다. 늘 메모를 갖고 계획적으로 시간을 관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국내 최초의 비서실 조직

삼성은 1950년대 중반 이후 그룹 형태를 갖췄다. 삼성물산을 필두로 제일제당,제일모직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안국화재,한국타이어,효성물산,근화물산,조선양조,풍국주정 등도 지분 인수 등의 방식으로 삼성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호암은 커진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근대식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연 · 지연 · 혈연에 의한 채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공개채용 제도를 실시한 것.1954년 6월 삼성물산이 처음으로 대졸사원 4명을 공채했다. 1957년부터는 그룹 단위로 공채를 실시했다. 1956년 11월 각 대학 게시판을 통해 사원모집을 알렸다. 이듬해 1월 2000여명이 응시한 가운데 서울대 상대에서 1차 필기시험을 치렀다.

1959년에는 일본 기업의 경영시스템을 참고,비서실 조직을 세웠다. 혼자 정보를 습득해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그룹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조직은 고유 기능인 의전뿐만 아니라 기획,조정,홍보 등의 업무도 담당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재무와 감사 기능까지 더해졌다. 비서실 조직은 이건희 회장 재임 기간 중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 등으로 간판을 바꾸며 삼성의 글로벌 도약을 이끈 컨트롤 타워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