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았던 사람,여기에 잠들다. "

호암은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명을 즐겨 인용했다. 평생을 추구했던 경영원칙 '인재제일(人材第一)'과 맥이 닿아 있어서였다. 호암은 인재경영을 통해 '삼성의 300년 대계'를 구상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1년의 계(計)는 곡물을 심는 데 있고,10년의 계는 나무를 심는 데 있으며,100년의 계는 사람을 심는 데 있다"며 "인재만 모으면 100년이 아니라 300년을 가는 기업을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종업원 주주제의 효시

인재 선발 · 양성과 관련,호암은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用人勿疑)'가 대표적인 예다. 의심이 가거든 고용하지 말고,일단 뽑았으면 의심하지 말고 일을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호암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냈다. 호암이 한국전쟁으로 사업 기반을 잃어버렸을 때의 일이다. 간부들에게 경영 전권을 맡기고 떠났던 옛 회사 조선양조 임직원들이 실의에 빠져있던 호암을 찾았다. 김재소 사장은 전쟁통에 땅에 묻어가면서까지 힘겹게 지켰던 돈 3억원을 건네며 "이 돈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해 보시라"고 권했다. 믿음으로 자신들을 대했던 창업주에 대한 보답이었다. 당시 3억원을 1953년,1962년에 단행된 두 차례의 화폐개혁에 대입하면 요즘 돈으로 30만원이다.

적절한 보상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불어넣는 것도 호암이 즐겨썼던 방식이다. 한국전쟁 직전인 1948년,갓 창업한 삼성물산공사에 종업원 주주제를 도입한 게 대표 사례다. 호암은 직원들에게 조금씩이나마 회사 지분을 가질 것을 권했다. 삼성물산공사는 신생 회사였지만 종업원들에 대한 대우가 좋았고 배당 수입도 상당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업무에 임하는 직원들의 자세도 남달랐다. 삼성물산공사는 창업 후 2년째인 1950년,국내 최대의 무역회사로 발돋움했다.

◆'여공애사'가 바꿔놓은 제일모직 기숙사

호암은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일본 공장 여공들의 혹독한 노동환경을 다룬 호소이 와키조의 '여공애사'(女工哀史)라는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책 속의 여공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으며 끼니를 비료용 생선으로 때웠다.

호암은 1954년 제일모직 생산라인을 만들며 최신식 기숙사를 함께 지었다. 한국에서 '여공애사'를 재현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숙사에는 꽃이 가득한 정원이 딸려 있었다. 여직원들은 가족들이 면회를 올 때마다 정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건물 안에는 미용실 · 세탁실 · 목욕실 · 다리미실 · 도서실 등이 갖춰졌다. 목욕탕은 24시간 내내 개방했다. 화장실도 당시 서울 유명 호텔에서나 볼 수 있던 수세식이었다. 1961년 늦가을 기숙사를 방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이 정도면 안심하고 딸을 맡길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부 제일모직 임원들은 "기숙사에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붓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모직은 고가의 제품이오.만드는 사람의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우도 최고로 해줘야 하오."

◆철저한 업적 보상,신상필벌 확립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한 호암이었지만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칼 같았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게 하고,유능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인사관리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삼성은 기업 인사고과 제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기업이다. 첫 그룹 공채를 시행한 1957년도부터 직원들을 평가했다. 삼성의 인사고과는 능력고과와 업적고과 등으로 나뉘었으며 승진,교육,전보,상여금 지급 등에 폭넓게 활용됐다.

호암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논어'라고 말 할 만큼 유교적인 색채가 강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장자상속의 관례를 깨고 3남이었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적합한 사람에게 자리를 준다는 기준을 아들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삼성 원로들의 설명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승계는 단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았다. 후계자 교육에는 무려 15년이 걸렸다. 삼성그룹을 경영하려면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호암은 중요한 인사를 만날 때마다 이 전 회장을 동석시켜 예절과 대화법을 익히게 했다. 신훈철 전 삼성코닝 사장은 "이 전 회장은 선대 회장의 인재제일 경영이 낳은 최대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