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연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해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만간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연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고 구체적 시점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양측 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단서는 달았다. 이 대통령은 "유익한 대화를 해야 하고 북핵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의 BBC인터뷰 발언은 과거보다 훨씬 더 진전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연내'라고 못을 박은 것은 처음이다.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특히 최근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 포사격 훈련으로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은 국면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정상회담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올해 남북관계에 새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지난 4일 신년 연설의 연장선상이다. 이 대통령이 "북한은 붕괴 직전 상황이 아니다. 김 위원장 건강도 다소 회복이 됐다"고 말한 것은 북한 사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 들어 단절되다시피한 남북간 의사 소통 채널이 이뤄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청와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원칙에 맞고 조건이 충족된다면 언제든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한 것이라는 게 이동관 홍보수석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당초 "연내에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대통령의 실제 인터뷰 내용과 달리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사실과 달리 전해 논란이 일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피곤한 상황에서 인터뷰가 이뤄져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고 파장이 클 수가 있어 이 대통령에게 발언의 진정한 의미를 물어본 것을 토대로 보도자료를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 발언이 잘못 전달된데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분위기도 과거와 사뭇 다르다. 이 대통령은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외교안보자문단 조찬 간담회에서 "만남을 위한 만남,원칙없는 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라고 한 것과 차이가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당장 손에 딱 잡히는 결과를 내기에는 양측 간 간극이 여전하다. 남측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핵과 평화 문제는 미국과 풀고 남측과는 경협과 인도적 지원만을 논의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다보스(스위스)=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