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 회장이 직원들에게 첫사랑 사연을 공개했다. 두산그룹 사보 '추억의 사진을 꺼내다' 코너에 '나의 첫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을 올린 것.CEO(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추억을 소탈하게 털어놓으며 직원들에게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섰다는 점에서 그룹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박 회장의 이야기는 첫사랑을 처음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학교 입시 준비를 위해 함께 과외 받던 친구의 집에서 그는 친구의 여동생과 운명처럼 마주쳤다. 그녀를 만났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썼다. "지금도 그리라면 그릴 수 있겠지요. 감색 교복에 노란 스웨터를 덧입은 하얀 얼굴의 소녀.무슨 말을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그 아이의 모습만이 온 머리를 채웠죠."

박 회장은 그녀를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했다. 숫기 없는 성격 탓에 말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중 · 고교 6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대학 진학 후 친구에게 "네 동생과 사귀어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노(NO)'였다. 잘못하면 우정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은 친구의 말을 받아들였다.

4년 뒤 대학을 졸업할 때 몇 건의 선이 들어왔다. 하지만 별로 흠 잡을 데 없는 상대를 그는 갖은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첫사랑의 기억이 마음에 남아서다. 결국 그녀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11년간 간직해온 마음을 고백했다.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소녀는 오늘 이 순간에도 컴퓨터를 두드리는 내 옆에서 졸고 있어요. 정말 행운아인 나는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곁에 둘 수 있게 됐지요. 이제는 아줌마가 돼버린 아내에게서,아직도 가끔은 하얀 얼굴과 노오란 스웨터가 너무도 예뻤던 그 소녀를 봅니다. "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