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한 달 만에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이 백지화됨에 따라 관치금융 논란,KB금융의 경영공백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회장 후보 선출에서 사퇴까지

이번 사태의 발단은 KB금융 이사회가 지난해 10월29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KB금융 측에 회장 선임 일정을 늦춰줄 것을 주문했다. 올해 1월 사외이사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는 만큼 이를 반영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KB금융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회추위는 "최고경영자(CEO)를 오랫동안 공석으로 둘 수 없고 연말 연초 사업계획 작성과 조직 개편 및 인사 이동 등 해야 할 일이 많아 늦출 수 없다"며 회장 선임 절차를 강행했다. 강 행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3명을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
고개 숙인 강정원, 금융당국 고강도 압박에 "조직 위해…"
회장 선출을 위한 최종 면접을 앞두고 김 전 사장과 이 사장이 전격 사퇴했다. 이들은 "회장 선출이 불공정하다"며 KB금융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강 행장은 12월3일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에 추천됐다.

이때부터 금융당국의 개입이 본격화됐다는 것이 KB금융 안팎의 정설이다. 두 후보와 강 행장 모두 사퇴시켜 회장 선임을 오는 3월 정기 주총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고위층과 금융당국의 뜻이었으나 강 행장이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KB금융 때리기는 금융감독원의 사전검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12월16일부터 23일까지 종합검사를 방불케하는 사전검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주요 부서장의 컴퓨터 12대를 가져가고 강 행장의 운전기사까지 면담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국가정보원과 검찰마저 나서 강 행장과 사외이사들의 비리를 캘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일부 사외이사들은 금융당국이 사생활까지 들추는 것에 심한 부담을 느껴 강 행장에게 회장 내정자 사퇴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행장도 자신 때문에 사외이사들과 KB금융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후폭풍 거셀듯

금융당국에서는 강 행장이 회장 내정자에서 물러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은행장 직마저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강 행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우회적인 압박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행장의 임기는 오는 10월30일이다. 회장 후보와 함께 은행장마저 곧바로 그만둘 경우 회장과 행장 공석으로 인한 KB금융 경영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는 3월 정기 주총이 변수이긴 하지만 강 행장이 임기를 채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KB금융의 회장 선임이 파행으로 끝남에 따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칼을 동원한 전방위 압박으로 경영진 인사에 개입함에 따라 앞으로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에는 회장 내정자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들에게까지 칼 끝이 겨눠져 관치금융 부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강 행장을 회장으로 선임하는 데 찬성표를 이미 던진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과 함께 KB금융 신뢰도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부 지분이 있는 국책기관도 공기업도 아닌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 절차가 주주의 뜻이 아닌 금융당국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국내 금융시장만 멍들게 됐다"고 비판했다.

강동균/김현석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