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시행을 눈앞에 두게 됐다.

노동 전문가들은 13년간 묵은 법안의 시행이 확정됐다는 데 의미를 두면서도 향후 야기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12 · 4 노 · 사 · 정 합의안'이 정치권을 거치면서 기형적 모습으로 변했고 노사 갈등을 야기할 소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법 취지보다 노동계를 의식하는 데 몰두했고 정부 역시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하던 원칙론을 지켜내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노사관계 선진화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고 불명확한 조항으로 논란의 여지를 남긴 점이 아쉽다"며 "철저한 준비를 통해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안 곳곳에 보완 여지

전문가들은 법 조항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향후 행정법규나 지침 등을 통한 보완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제도에 포함된 '노동조합의 유지 · 관리 업무'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당초 노 · 사 · 정은 교섭 · 협의,고충처리,산업안전 활동 등에만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타임오프 제도에 합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노조 유급 활동범위에 '통상적 노조관리활동'이라는 표현을 담으면서 사실상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보전해주는 모양새가 됐다. 논란이 일자 환노위는 최종 개정안에 통상적 노조관리활동을 빼고 '노동조합 유지 · 관리업무'를 끼워넣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모호하다는 반응이다. 노사가 특정 업무를 놓고 타임오프 사유인지,아닌지를 놓고 다툴 가능성이 크다. 노동부가 별도의 행정법규를 통해 구체적 업무 내용을 명시해줘야 한다.

대통령령이 아닌 별도 위원회를 통해 타임오프 상한선을 정하기로 한 점도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위원회 내부에서 노동계 추천 위원과 경영계 추천 위원이 상한 범위를 놓고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위원회의 위원 선발,운영 및 심의 · 의결 과정에서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되거나 외부 압력에 기준과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서도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개정안은 노조 자율로 교섭대표를 정하고,여의치 않으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대표를 맡지만 그렇지 않으면,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노조가 참여하는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노조간 주도권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또 사측이 동의하면 각각의 노조가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지 않고 개별 교섭이 가능하도록 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사업장에서 노조들끼리 연합해 사측에 개별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측이 1년 내내 협상해야 하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학계에서는 "향후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방식,교섭기간,쟁의 자격 등 시행령을 통해 정해야 할 것이 많다"며 "노사관계 선진화의 근본 취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기준을 정하고 엄격하고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노 · 사 · 정 합의 지켜지지 않아 유감"

재계는 '12 · 4 노 · 사 · 정 합의정신'이 지켜지지 않은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식 논평에서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후진적 노사관행 타파와 노사공생이라는 '12 · 4 노 · 사 · 정 합의정신'을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 산별노조 기업지부의 개별교섭을 허용한 점,근로시간 면제 대상에 노동조합의 유지 · 관리업무가 포함된 점,노조의 근로시간 면제 상한초과 요구에 대해 벌칙조항이 삭제된 점 등은 산업현장의 노사갈등을 초래하고,회복세를 보이는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조항이 삽입돼 임금 지급 금지원칙을 어겼다"며 "민주노총 등에 유리하도록 복수노조 허용 시기를 앞당기고서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을 강화하지 않은 부분도 형평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고경봉/조재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