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국회의원 출신인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지난해 7월 부임한 뒤 여러 건의 보증 관련 청탁을 받았다. 청탁을 해온 사람들 중에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의원 출신 동료 두 명도 있었다. 안 이사장은 "지점 직원이 보증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사장이 하라고 하면 조직이 유지될 수 없다"며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결국 두 사람이 운영하던 회사들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올해 가장 힘든 1년을 보낸 공기업 수장 중 한 명을 꼽으라면 안 이사장을 들 수 있다. 신보는 지난해 9월 터진 금융위기로 자금경색에 빠진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올해에만 총 42조6000억원의 보증을 했다. 이는 지난해 31조7000억원에 비해 10조원 이상 늘어난 규모다.


안 이사장은 "보증지원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만 해도 힘든데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노조와 구조조정 관련 협의점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며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보증과 관련된 청탁을 거절하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안 이사장은 "중소기업 경영환경이 안 좋아지다 보니 부임 후 올해 5월까지 의원 시절 동료들,지역구였던 대구의 지인들로부터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부탁을 냉정히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욕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신보 노사는 올해 전 직원 임금 5% 삭감,연봉제 도입,44명 명예퇴직 등에 합의했다. 안 이사장은 "처음 신보에 와보니 직원들의 복리후생 수준이 과도할 정도였다"며 "미혼 직원이 지방근무를 할 때 이용하는 사택의 전기료 수도료 등도 회사가 내주는 등 일반적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러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큰 틀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다. 안 이사장은 그러나 "평일에 밤 11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임금을 더 주지는 못할망정 깎아야 한다는 사실이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신보는 내년 전체 보증 규모의 60%를 상반기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내년 보증 예상 규모가 총 43조원인데 이 가운데 25조8000억원을 상반기 중에 공급하겠다는 얘기다.

안 이사장은 "내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출구전략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되면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반기에 선제적인 보증 운용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그는 "대기업에는 경기회복의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중소기업 경기는 아직도 'L'자 형태를 띠고 있다"며 "중소기업대출 보증 만기 연장조치도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이사장은 "국회의원은 폭넓은 분야를 다룰 수 있지만 깊이가 부족한 반면 신보 이사장직은 보증 지원이라는 정해진 임무를 심도 있고 책임감 있게 다룰 수 있는 게 다른 것 같다"며 "2011년 7월까지 남은 임기 동안 직원들에게 애국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라는 공심(公心)경영을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복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은 신보를 이끄는 데만 충실하고 싶다"며 "하지만 사람의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글=이태훈/사진=양윤모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