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국내 업체인 L사는 지난해 이란으로부터 비(非)전략물자인 흡수식 냉온수기를 구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수입업체가 미심쩍어 정부에 수출허가 심사를 신청했다. 그 결과 이란 측 수입업체가 영국 정부가 WMD(대량파괴무기) 확산 우려로 제재하고 있는 문제 회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L사는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만약 L사가 흡수식 냉온수기가 전략물자에 해당하지 않는 것만 확인한 채 무허가로 장비를 이란에 수출했다면 해당 이란 업체와의 거래가 문제돼 국내 처벌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WMD 확산 혐의로 제재받아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례 2.영국의 한 업체는 지난 9월 국내 W사에 비전략물자인 압력스위치를 판매하려다 영국 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거부당했다. 이 스위치의 최종 사용자인 이란 회사가 영국 일본에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WMD 확산 우려 업체였기 때문.수출 허가 거부로 이란 업체와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거래를 시도한 사실과 W사의 업체명이 국제수출통제체제 우려거래 대상자 목록(Denial List)에 올랐다. 이로 인해 최소 3년간의 무역 거래에 제한을 받게 됐다.

최근 들어 전략물자가 아닌 품목도 이란에 대한 수출이 거부되거나 제재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출품목과 거래업체 선정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21일 전략물자관리원 등에 따르면 국제사회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수출 통제를 꾸준히 강화해오고 있다. 실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미 세 차례에 걸친 결의안 채택을 통해 이란에 대한 수출을 금지하는 품목 범위를 확대했다. 또 금융거래 제한을 강화하는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미국의 경우 이란 거래 규정,이란 · 북한 · 시리아 비확산법,이란 · 이라크 무기 비확산법,이란 제재법 등 다양한 제재 법규를 통해 이란과 관련한 거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이란과 거래하는 외국 업체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의회에서 이란 정제유 제재 법안(Iran Refined Petroleum Sanctions Act) 제정을 상정,이란에 가솔린 등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또는 이를 지원(운송,보험 서비스)하는 자국 및 외국 기업에 대해 미국과의 모든 거래를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이렇게 강화한 수출 통제에 따라 주요국은 이란 등 우려국에 대한 수출입 거래를 자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업체들의 이란 수출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08년 이란 수출액은 약 47억달러로 전년 대비 104% 증가했다. 이는 전체 수출 증가율 14%의 약 7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영국의 경우 지난해 대이란 수출액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소했다. 미국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액이 소폭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10억달러 선을 넘지 않는다. 일본도 2008년 수출액이 전년 대비 64% 정도 늘었지만 여전히 20억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이란에 대한 수출 증가는 미국 및 유럽 업체들의 대이란 거래 위축에 따른 반사이익 영향이 가장 큰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이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이란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최근 국제사회와 미국 등 주요국에서 WMD 확산을 막기 위해 이란과 거래가 활발한 국가 및 업체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기업이 이란 업체와의 불법 수출 혐의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3개 업체가 국내 사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WMD 관련 제재 대상 기업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이란계 자회사이거나 이란 업체와 거래하던 업체들이다. 이 리스트에 오르는 업체는 미국과의 거래를 제한받는 등의 불이익은 물론 리스트가 미국 정부 웹사이트에 공개돼 다른 국가나 기업과의 무역 거래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국가를 막론하고 수출품의 민감 여부,즉 전략물자인지를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품이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상황 허가 대상 품목 해당 여부 △수입자의 우려 거래 대상자 해당 여부 △수입자에 대한 의심 사유가 있는지 등을 반드시 따져야 안전하다고 전략물자관리원 측은 조언했다. 특히 거래 상대방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수준의 계약 조건을 제시해올 경우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이번에 미국 국무부 제재를 받게 된 국내 Y사는 2006년 시중가보다 약 30% 높은 가격으로 구매를 제의해온 이란 업체에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포타시움비플로라이드를 무허가로 수출하다 적발돼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특히 이란에 대해서는 전략물자 중 핵공급국그룹(NSG · 원자력 품목) 및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 미사일 · 무인항공기 및 관련 품목) 통제 품목과 모든 재래식 무기의 수출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온 품목을 이란으로 재수출하는 경우에도 ITR(이란 거래 규정)와 미국의 수출통제 규정인 EAR(수출관리 규정)를 참고해 필요시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이 밖에도 기업은 지식경제부의 전략물자관리시스템(www.yestrade.go.kr)을 통해 전략물자 수출 또는 이란 수출에 대한 유의사항 및 최근 동향을 확인,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심성근 전략물자관리원 원장은 "무역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