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한번 사용한 아이디어는 무조건 폐기 처분합니다. '재탕'이란 없죠."

디지털(온라인)마케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디지털광고회사 바바리안그룹(TBG · The Barbarian Group)의 벤저민 팔머 대표(36 · 사진)는 요즘 광고업계에 성행하는 '아이디어 돌려막기'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TBG는 제일기획이 디지털마케팅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2주 전 인수했고 팔머 대표는 TBG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제일기획 및 삼성전자 측과의 면담을 위해 최근 방한했다.

팔머 대표는 단돈 500달러로 바바리안을 창업해 키운 광고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뉴욕주의 렌슬레어 폴리텍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인터넷 마케팅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는 '괴짜 CEO'로 유명하다. 보스턴에 있는 본사 사장실에는 책상이 없다.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서서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 명함도 직접 만든다. 노란색 바탕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자신의 얼굴을 담았다.

TBG는 직원 수 75명인 작은 회사지만 광고계의 아카데미상인 칸 광고제의 사이버 부문 대상,티타늄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애플 구글 GE 등을 광고주로 확보했다. 2004년 버거킹 '텐더크리스피 치킨 샌드위치' 온라인 마케팅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 'The Subservient Chicken(시키는 대로 하는 닭)'은 입소문 마케팅의 교본으로 꼽힌다. 고객이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닭으로 분장한 인물이 이를 따라하는 기발한 사이트다. 오픈 후 석 달간 1억명이 방문했다.

버거킹 사이트를 비롯 TBG의 작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지 않기 때문.팔머 대표는 "소비자는 이 브랜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아챌 만큼 영리하다"며 "접근법은 무조건 새로워야 하며 소비자가 직접 판단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BG는 신규 프로젝트를 맡으면 모든 직원이 함께 아이디어를 낸다. 이미 나온 아이디어는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창의성을 중시하지만 원리원칙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광고주가 인정에 호소하며 무리한 요구를 하면 가차없이 거절한다. 또 자사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광고주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거부한다는 설명이다.

바바리안은 25개국에 해외지사를 운영 중인 제일기획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세계 각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제일기획 역시 바바리안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인 셈이다.

팔머 대표는 "여태껏 미국에서만 활동했지만 이젠 전 세계 기업이 잠재적 광고주"라며 "내 머릿속에 넘실대는 1000여가지 아이디어를 기업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최적 공간인 인터넷에서 마음껏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정은/사진=김병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