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상황 개선 긍정평가 불구, 제로금리 상당기간 유지
특별유동성공급 조치 예정대로 종료..출구전략 준비작업 해석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16일 미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로(0)금리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이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버냉키 의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대해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연준이 경기부양에 확실히 매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버냉키 의장의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으나, 미국의 언론과 금융시장은 버냉키 의장이 적어도 내년말까지는 제로 금리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공황의 원인과 전개과정에 대한 연구로 학자로서의 명성을 쌓은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 발생 초기에 연준이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가 화를 자초했던 경험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초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탄탄한 경기회복세의 지속을 확인할 때까지는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시장의 분석이다.

일부 경기지표들이 경기회복을 뚜렷하게 예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냉키 의장은 여전히 "심각한 역풍이 도사리고 있다", "경계심을 늦추면 안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도 미국의 경기상황에 대한 평가는 종전에 비해 상당히 호전됐음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성명은 "고용시장의 열악한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표현을 담아 경기침체 이후 처음으로 고용시장의 개선을 언급했다.

또 가계의 소비지출에 대해서도 좀 더 진일보한 평가가 나왔다.

종전까지는 "가계소비가 안정되고 있는 듯하다"고 진단했으나 이번에는 "가계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표현을 바꿨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초저금리 정책을 "상당기간에 걸쳐"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기상황을 낙관할 수 없는 한 정책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연준이 제로금리 정책을 상당기간 동안 계속 유지하기로 한 이유는 불투명한 경기상황 말고도 통화정책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연준은 작년 금융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각종 특단의 조치를 통해 1조달러 이상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해왔다.

금리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동성을 먼저 회수해야 한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출 경우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단이 고갈되면 헬리콥터로 달러를 마구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을 막겠다고 공언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은 버냉키는 양적완화 조치를 비롯해 온갖 조치를 동원해 금융시장의 파국을 막아냈고 미국 경제를 침체의 수렁에서 건져냈다.

문제는 이런 유동성을 언제,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준의 입장에서는 자산담보부기업어음머니마켓펀드유동성대출(AMLF), 기업어음자금대출(CPFF), 프라이머리딜러신용(PDCF), 기간물국채임대대출창구(TSLF) 등 이름도 생소한 조치들을 모두 정리하고, 채권매입을 통해 1조달러 이상 뿌려놓은 자금을 다시 회수하기 전까지는 정책금리의 인상을 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은 금리인상 시점을 2011년 이후로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FOMC는 이번 성명을 통해 기존에 천명했던 대로 특별유동성 공급조치들의 시한이 만료되면 더 이상 이를 연장하지 않고 대부분 거둬들이겠다고 밝혔다.

구제금융을 받았던 대형금융회사들이 속속 지원자금을 상환하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듯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만큼 연준은 특별 유동성 공급조치들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행을 비롯해 14개 각국 중앙은행과 맺은 통화스와프 협정도 만료시한인 내년 2월1일로 종료하기 위해 해당 중앙은행들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보기에 따라서는 연준이 출구전략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적완화를 통해 풀어놓은 유동성을 회수하면서 출구전략의 신호탄과 다름없는 금리인상을 준비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유동성 공급조치를 거둬들이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각종 조치들의 종료시한을 준수하겠다는 것으로 새로 일정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어서 출구전략에 착수하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연준이 워낙 방대한 자금을 시중에 뿌려놓은 터에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이를 회수하는데도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출구전략의 시행이 단기간내에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연준이 예정된 수순에 따라 완화적인 통화정책들을 하나하나 거둬들임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금리인상을 준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