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잘나가는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브랜드가 일본에선 기를 못 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 기업 역시 한국에선 큰소리를 치진 못한다. 한국과 일본 내수 시장은 분명히 서로 넘기 힘든 벽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집념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8년여 만에 일본 시장에서 철수한 것과 달리 도요타가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반면 삼성,LG,현대차 등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은 아예 일본 시장에서 손을 뗐다. 현대차는 2001년 일본에서 승용차 판매를 시작한 뒤 지난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1만5000여 대에 불과할 정도로 참담한 실적을 거둔 끝에 얼마 전 승용차 판매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2001년 1월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가 한국에 상륙하자 맞대응 성격으로 내렸던 용단(勇斷)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현대차의 일본시장 철수는 도요타가 성공리에 한국 시장에 안착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도요타의 중형 세단 '캠리'는 구형 모델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수입차 차종별 판매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도요타가 단 4개 차종으로 3주 만에 계약한 자동차 대수는 5200여 대에 달한다. 렉서스를 통해 고소득층을 사로잡은 도요타가 이번엔 대중차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백색가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일본 시장에서 백기를 들었고,LG전자 역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LG전자의 디지털 액자도 코닥과 제휴한 덕분이다.

도쿄 아키하바라(일본 최대 가전매장 거리)에서 한국 가전제품을 찾기란 모래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반면 서울 강남권의 하이마트 점포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등 고소득층이 자주 이용하는 국내 유통매장에서 소니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12월 현재 압구정점에서 소니의 매출은 엔화 강세로 삼성의 20% 수준으로 떨어졌지만,작년에는 40% 수준까지 근접했었다"며 "가격을 조금만 낮추고 마케팅만 잘한다면 언제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SLR 등 고급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경쟁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일본 기업들이 완승을 거두고 있다. 국내 시장은 캐논,니콘,소니 등 일본 '빅3'가 싹쓸이하고 있다. 삼성이 지난해 중급 DSLR 제품인 'GX-20' 모델을 내놓긴 했지만 업계에선 일본 회사 제품을 들여와 외관만 바꿨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는 닌텐도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불황으로 적자를 내는 등 요즘에는 다소 흔들리고 있으나 '닌텐도DS'와 '위(Wii)'를 통해 국내 비디오게임 시장의 40%가량을 휩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모지에 가까운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이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박동휘/안정락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