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터키 최대의 도요타 딜러인 두만카야가 최근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현대자동차 법인에 "현대차를 판매하고 싶다"며 제안서를 냈다. 올 들어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현대차가 5~6위권으로 뒤처진 도요타와의 격차를 갈수록 벌리고 있어서다. 현대차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지상 4층짜리 두만카야 건물에 현대차 간판을 내걸고,향후 3년간 연 2500대씩 판다는 약속을 받은 후 제안을 받아들였다.

#2.도요타자동차는 내년에 중국 상하이 외곽에 약 400억엔을 투자해 300여명의 개발인력이 근무하는 첨단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일본 완성차 업체가 중국에 독자 R&D센터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요타는 그동안 올스톱됐던 미국 미시시피주 하이브리드카 생산공장 설립도 재추진하기로 했다.

현대 · 기아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 빠른 속도로 파고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수십년 전 자동차 기술을 전수해준 일본 업체들을 따돌리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엔고의 직격탄을 맞았던 일본 업체들도 올해 대부분 구조조정을 완료,체질 개선에 성공하면서 한국 업체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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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발판 마련한 한국차

미국에서 현대 · 기아차는 올해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였다. 도요타 혼다 등을 포함한 미국 내 상위 10개 업체 중 올해 유일하게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현대 · 기아차는 올 1~10월 총 63만4282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 성장했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 성장을 한 도요타(-26%) 혼다(-23%) 닛산(-24%) 등과 대조를 보였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도 일본 경쟁사들을 여유있게 제쳤다. 위에둥(중국형 아반떼)과 같은 현지형 모델을 잇따라 투입한 덕분이다. 현대 · 기아차가 올 1~10월 중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총 46만590대(점유율 7.1%)다. 폭스바겐 GM 등에 이어 종합 4위를 기록했다. 닛산(42만2460대,5위)과 도요타(32만9305대,8위),혼다(29만1335대,9위) 등 '일본 3인방'도 따돌렸다. 인도에선 현대차가 스즈키와 현지업체의 합작사인 마루티-스즈키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에서도 현대차는 도요타에 이어 점유율이 두 번째로 높다. 기아차는 도요타와 닛산(3위)엔 다소 밀리고 있지만,미쓰비시(6위)보다 높은 5위 수준이다. 작년만 해도 현대차는 4위,기아차는 6위였다.

GM대우자동차 역시 모기업인 GM의 네트워크를 통해 신흥시장에서 중 · 소형차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시보레' 브랜드로 이집트 등 북부 아프리카에 마티즈 젠트라 등을 수출,현지 점유율 2~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 · 기아차 등 한국차의 질주는 역설적으로 작년 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판이 됐다. 경기침체 속에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싸고,연비가 좋은 중 · 소형차로 눈을 돌린 것이다.

◆견제 나선 '최강' 일본차

과잉생산에다 사상 최악의 엔고까지 겹치면서 바짝 엎드려 있던 일본 업체들은 대대적인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대량 감원과 비용절감 등 혹독한 긴축경영으로 몸집을 줄이면서 경영효율도 많이 높아졌다는 평이다. 이미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의 업체들은 지난 3분기(7~9월)에 나란히 흑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연 100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도요타의 흑자 전환은 꼭 1년 만이다.

도요타는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내년 마케팅 예산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프리우스'에 이은 두 번째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인 '사이'도 내놓기로 했다. 사이는 프리우스보다 큰 2.4ℓ짜리 하이브리드카다. 전 세계 친환경차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도요타는 이 같은 친환경차를 내년부터 연 100만대씩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또 120만엔대 소형차(1000㏄급)인 '엔트리 패밀리카'(EFC)를 2011년 인도에서 생산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혼다 역시 인도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저가차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가격은 150만엔대로,내년부터 현대차 i10 등과 경쟁하게 된다. 혼다는 인기 모델인 하이브리카 '인사이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내년에 선보이고 저가형 전기차 개발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전기차 '리프'를 시험 생산 중인 닛산은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및 유럽시장에 이 모델을 내놓기로 했다. 미쓰비시와 마쓰다,스바루 등도 고효율 신모델을 무기로 내년부터 시장확대 전략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일본차들은 미국에서만 약 40%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차가 올해 엔고-원저의 환율 효과로 글로벌 판매를 늘렸지만 브랜드 인지도와 내구품질,중고차 가격 등의 면에서 일본차와의 격차는 여전하다"며 "일본기업들은 내년엔 저가형 친환경차를 무기로 한국차 견제를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차엔 내년이 최대 고비"

이 같은 상황에서 내년이 국내 완성차 업계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쟁력을 회복한 일본차와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치열한 각축전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환율 효과는커녕 일정 부분 손실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현대 · 기아차는 원 · 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연간 2000억원의 영업이익이 날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소형차 구매를 장려해온 각국의 신차 구입 지원책이 올해 대부분 마무리된다는 점도 중 · 소형차 위주인 국산차에 불리하다.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연구개발(R&D) 투자 규모 역시 일본 업체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유럽위원회(EC) 보고서에 따르면,작년 현대 · 기아차의 연구개발비는 총 12억5000만유로로,76억1000만유로를 투자한 도요타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46억6000만유로를 투자한 혼다와 비교해도 27% 수준이다. 혼다의 작년 생산량은 394만대로,현대 · 기아차(418만대)보다도 적다.

한국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최근 들어 석 달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불안한 징조란 분석이다. 현대 · 기아차의 지난달 미국시장 점유율은 6.2%에 그쳤다. 지난 8월 8.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일본차 판매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9월 7.1%,10월 6.4% 등으로 떨어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내년엔 국내 업체들이 환율 하락과 유가 상승 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친환경차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등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