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자생적인 경기 회복에 대한 의구심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나 세제 혜택의 효력이 사라진 데다 두바이 사태 등으로 국내외 경제의 불투명성이 높아진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성태 한은 총재가 4분기는 물론 내년에도 국내외 경제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매달 금리인상 시기를 고민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준금리 동결 행진이 내년에도 지속될 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세를 근거로 단기간에 기준금리가 인상되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현재 기준금리를 비정상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총재가 내년 1분기 중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기준금리 동결 이유는

한은이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가 사라진 4분기에 자생적인 성장이 가능할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2%로 7년여 만에 3%대로 진입했지만 재고를 위한 기업의 생산 확대와 재정지출 확대, 세제 혜택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10월 광공업 생산은 전월 대비보다 3.8% 줄어들며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반전됐고 금융위기의 충격에 빠졌던 작년 같은 달에 비해서도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지난 10월 상승세를 멈춘데다 선행지수도 전월 대비 기준으로 6월부터 하락세를 지속하는 등 경기 회복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두바이 사태와 신종플루 등 국내외에서 불확실성 요인이 산재한 점도 섣부른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시키는 요인이다.

물가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어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릴 이유도 없어 보인다.

11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기대비 2.4% 상승하면서 4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주까지 7주째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키움증권 유재호 연구원은 "물가나 자산가격 측면에서 당장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시급성이 없어 보인다"며 "경기 부양책 효과가 소진된 4분기의 경제성장률이 어떻게 나올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톱 드러낸 매…1분기 금리인상 주목

그러나 기준금리 동결 움직임이 내년에도 지속될 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이른바 매파로 인식돼 온 이 총재가 이날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며 발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날 수평선, 문(출구), 헬리콥터 등 잘 사용하지 않던 용어를 동원해 선제적인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물체가) 수평선에 올라왔을 때는 늦기 때문에 수평선 뒤에 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해야 하며 통화정책에서도 문제가 이미 현실화되고 나서 대책을 쓰면 늦다"며 경제 회복이 지표로 확인되기 전이라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작년 10월 이후 올해 2월까지 시행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헬리콥터로 수송해서 공중에서 투하한 것과 같다"며 "그러나 나갈 때는 한 번에 헬리콥터로 실어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문을 빠져나가려면 미리 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내년 경제 전망이 밝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기준금리 수준은 여전히 낮다고 평가해 내년 3월 퇴임 전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현재 물가 상승률이 2.4%이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3%를 넘는 상황에서 내년 5% 성장이 확실해지면 2%의 기준금리는 엄청나게 낮다"며 "균형잡힌 기준금리로 가기 전까지 금융은 계속 완화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들, 인상시점 예측 분분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해를 넘기자 한은이 과연 내년 언제쯤 금리 인상에 나설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이성태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읽힐 만한 발언을 쏟아냄에 따라 발언의 진의와 통화정책의 향배를 두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일단,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쪽에서는 통화정책상 `출구전략'이 서서히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모두 공감하는 바이기 때문에 이 총재가 이를 다시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출구 쪽으로 서서히 움직여야 한다는 이 총재의 발언은 원론적 수준"이라며 "연평균 5% 성장률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 때 1~2개월 정도 앞서서 인상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하반기 흐름까지 파악되는 내년 2분기 말께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연구원도 "출구전략을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데 이의를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약간 당겨질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점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발언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쪽에서는 조만간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풀이했다.

이 총재의 발언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시장의 합리적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리투자증권 유익선 이코노미스트는 "출구를 향해 미리 전진해야 한다는 것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다만, 다소 둔화된 올해 4분기 경제지표가 발표되는 내년 2월이나 3월에 `깜짝' 인상을 단행한다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증권 최석원 채권분석파트장은 "이 총재 본인은 시장에 영향을 주고 싶지만 `외부'의 압박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우니 강경 발언을 한 것 같다"며 "발언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 기대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두바이 사태'를 비롯해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는 점도 변수로 꼽혔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홍정규 기자 harrison@yna.co.kr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