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 촉발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위기의 불씨가 유럽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말 두바이월드의 전격적인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 선언은 금융위기 극복과 경기회복 기대감에 들떠 있던 지구촌에 찬물을 끼얹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재정적자와 부채가 많은 국가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재정적자발 신용우려가 글로벌 경제에 다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정 취약한 PIGS 주목"

국제 신용평가사인 S&P는 9일 스페인의 재정상황이 예상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며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이는 향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S&P는 이미 지난 1월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S&P는 또 러시아 은행들의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전날 피치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고,무디스는 미국과 영국도 재정적자를 줄이지 않으면 최고등급(AAA)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다.

마르쿠스 발너 코메르츠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다른 국가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확대재정 후유증이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약한 고리'로 PIGS(포르투갈,아일랜드 ·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를 꼽고 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이미 올초에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경우 올해 재정적자가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와 12.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두바이와 그리스에 대한 대출이 많은 유럽 은행들이 돈줄을 조일 경우 동유럽이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바 있다.


◆딜레마에 빠진 유럽연합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들은 불씨가 더 확산되기 전에 진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그리스 재무장관은 "그리스는 아이슬란드나 두바이처럼 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연합(EU)이 그리스 구제 여부를 둘러싸고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유로화를 쓰는 그리스를 지원해주면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다른 '방만한' 국가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고,위기를 방치할 경우 유럽의 단일 통화체제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새해 예산안을 내놓으며 공공부문의 임금을 5~20% 삭감하고 실업자 수당 등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스페인은 세금 인상을 검토중이다. 'AAA' 등급을 자신할 수 없게 된 미국과 영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은 상원 예산위원회를 중심으로 초당적인 재정건전화 태스크포스(TF) 설립 논의를 시작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