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TV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 TV시장의 진자(振子 · 흔들이)는 다시 돌아온다.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12월4일 닛칸고교신문 인터뷰) "일본은 두려운 존재다. 막강한 원천기술에 부품 · 소재 경쟁력도 여전하다.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상대는 아니라고 본다. "(LG 전자계열사 사장)

세계 신산업 패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 기업들 간 정면 대결이 시작됐다. 굴뚝 시대를 대표하는 조선 기계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종은 한쪽의 비교우위나 세력 균형이 어느 정도 고착화한 상태다. 하지만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맞고 있는 전자와 부품 · 소재,녹색혁명이 몰아치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은 한국과 일본이 진검승부를 겨루는 사실상의 원년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산업계 질서가 재편 중인 가운데 한국은 글로벌 시장 확대의 자신감을 얻었고,일본은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상태다. 1980년대 초 오일 쇼크 이후 세계 제조업 패권을 장악한 일본의 도요타 혼다 소니 마쓰시타 NEC 샤프 무라타제작소 등은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약진을 거듭해온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SK에너지 등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국 업체들 역시 관록과 저력의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재개한 데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해 초 30%까지 떨어졌던 일본 부품업체들의 가동률이 최근 엔고(高)에도 불구하고 80% 선까지 높아진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본격화할 양국의 산업전쟁이 향후 세계 제조업 패권의 향배를 가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한국이 앞서 나가고 있는 TV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실지(失地) 회복을 노리며 거센 반격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자동차 전자 화학 분야의 부품 · 소재 등에서는 한국 측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동북아시아가 세계 제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 · 일 전쟁의 승자가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양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까지 비슷해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