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치열한 화장품업계에선 히말라야 빙하수,사막의 바오밥나무 등 희귀 성분이 여심을 사로잡는 마케팅 수단이다. 때문에 화장품회사 연구원들은 효능이 우수한 성분을 찾아 세계 오지를 찾아 다닌다. '고려인삼'이란 차별화된 성분으로 연간 5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연구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의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에서 만난 김연준 한방화장품연구소 팀장(42 · 오른쪽)과 하정철 책임연구원(35 · 왼쪽)은 "최상의 국산 한약재를 구하러 전국 산간벽지를 다 찾아다녔다"며 "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요즘은 무조건 최고 봉우리와 최끝단 섬에 가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동의보감''본초강목' 등 한의학 서적 읽기가 '취미'이고,전국 한약재들이 모여드는 경동시장이 '놀이터'다. 히말라야 빙하수,사막의 꽃 등에 비해 국산 한약재 구하기가 쉽지 않냐는 질문에 "설화수는 시중에 판매되는 재료가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것만 쓰는데 찾아내는 것부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팀장은 흔한 황기를 구하는 데 목숨까지 바칠 뻔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황기는 피부 수분을 잡아당기는 우수한 재료로,이를 우려낸 물을 설화수에 사용한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5년 이상 재배된 것이어야 하는데 시중에는 대부분이 1~2년산뿐이다. 때문에 전국 심마니 네트워킹을 가동,강원도 정선의 해발 800m 태백산까지 갔다. 김 팀장은 "한 할아버지를 따라 키만큼 자란 풀숲을 헤치며 20분간 절벽을 기어가는데 설화수 만들다 죽겠구나 싶었다"면서 "겨우 도착한 66만㎡(20만평)의 8년근 황기밭을 보고 '심봤다'가 절로 외쳐졌다"고 말했다.

하 연구원은 최서남단 청정지역 가거도의 자생식물 토후박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왕복하는 데만 꼬박 2박3일 걸리는 가거도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지역인데,연구개발 중 '강호동의 1박2일'에 등장해 비상이 걸렸죠.5시간 배멀미로 고생하면서 찾아내 빛을 보기도 전에 다른 업체들에 정보가 샐까봐 조마조마했어요. "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구한 재료도 유효성분을 상용화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보통 채집해온 2만여종 가운데 단 3종만 제품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효능검증을 거쳐 유효성분을 추출할 수 있어야 하고,제품으로 판매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해발 800~1000m인 백두대간의 희귀 자생식물을 어렵게 채집해 왔지만 모두 버려야 했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한방화장품들 가운데 설화수가 단연 1위를 유지하는 비법을 묻자 김 팀장은 "코카콜라 원액 제조법을 아는 사람을 손꼽을 정도로 설화수도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좋은 성분도 지나치면 피부에 해로우므로 유효성분을 최적량으로 배합하는 것이 제품력을 결정한다"고 귀띔했다.

김 팀장은 연세대 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1992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설화수 론칭 주역으로 꼽힌다. 하 연구원은 한양대 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치고,1999년부터 설화수 개발에 합류했다. 이들이 설화수 베스트셀러인 '윤조 에센스''자음유액''자함크림''진설크림' 등을 통해 보유한 특허만 20여건에 이른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