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현대백화점그룹 경청호 부회장의 기자간담회. 그의 첫 마디는 "정지선 회장이 나왔어야 하는 데..겸연쩍어서 나오지 못했다"였다.

그가 말한 "겸연쩍다"는 말의 의미는 이날 발표한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영성과가 정 회장의 '눈부신' 역할로 이뤄진 것인 만큼 정 회장 자신이 스스로 말하기가 쑥쓰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인 경 부회장이 정 회장을 대신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경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이 올해 매출 7조8천억 원을 올리고 경상이익 6천억 원을 달성, 내년부터 매년 6천억 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갖추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내실경영을 통해 이 같은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내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신규 백화점 점포 1개씩 6개를 차례로 개장한다는 게 이날 발표내용의 핵심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의 매출은 2003년 5조8천587억 원에서 2009년 7조8천51억 원으로 늘었고, 경상이익은 2천38억 원에서 6천35억 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투자총액은 2003년 1천738억 원에서 2009년 5천22억 원으로, 예금도 727억 원에서 6천581억 원으로 급증한 반면 차입금은 2003년 9천130억 원에서 2009년 4천905억 원으로 줄었다.

자산과 자본은 각각 92%, 208% 늘었지만 부채는 2% 느는 데 그쳤다.

부채비율은 104%에서 42% 크게 줄었다.

이날 발표자료는 모두 7년 전인 2003년과 2009년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꾸며졌다.

그룹 오너인 정 회장이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 본격적인 오너경영 체제로 전환한 시기가 바로 2003년이다.

따라서 이날 발표된 경영성과는 정 회장 중심의 오너경영 체제로 전환한 이후 7년간의 산물이라는 뜻을 은연중에 담은 셈이다.

경 부회장은 이 같은 정량적 지표 외에 정 회장의 지난 7년간의 눈부신 활약상도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했다.

그는 "현재의 경영성과는 2003년 정 회장 출범 시점부터 그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회사의 운영과 기업문화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며 정 회장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또 "현대백화점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 임직원의 노력도 많았으나 특히 회사의 구심점이 되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비전을 세워 임직원의 결속을 이뤄낸 정 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거듭 정 회장을 치켜세웠다.

정 회장이 부회장으로 취임한 2003년 이후 사원부터 부장에 이르는 각 직급 대표와 정기 모임을 통해 회사의 경영상황을 설명했으며 이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등 열린 기업문화를 만들었다고 경 부회장은 소개했다.

임직원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급여와 후생복지 체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한 것도 정 회장의 숨은 공로라는 게 경 부회장의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측의 이 같은 정지선 회장 알리기는 최근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대표이사 취임과 동시에 경영 전면에 등장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신세계 정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유통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롯데백화점의 신동빈 부회장과 현대백화점의 정 회장에게 쏠렸다.

하지만 신세계 정 부회장과 롯데의 신 부회장은 비교적 자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반면 7년 전인 2003년에 경영일선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의 정 회장은 상대적으로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유통업계 빅3의 하나로 자부하는 현대백화점으로서는 정 회장의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경쟁사 못지않게 오너 경영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정 회장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지만, 정 회장이 아직 37세의 젊은 나이여서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경 부회장은 "앞으로 2~3년 후에나 정 회장이 공식적인 외부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유통업계 더 나아가 재계 전반적으로 창업 2~3세대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추세를 감안하면 현대백화점그룹의 정 회장의 행보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정내 기자 j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