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포탈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체육계를 중심으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달 김진선 강원지사와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이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데 이어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은 7일 동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홍콩 현지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고 있는 이 전 회장의 조기 사면을 촉구했다.

과거 사법처리를 받았던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논리'를 앞세워 단기간에 사면된 사례는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선 유독 체육계가 사면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체육계가 오매불망 이 전 회장의 복귀를 바라는 것은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이건희 IOC 위원만큼 영향력을 지닌 국내 인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체육계의 가장 큰 현안은 `삼수'에 나선 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다.

이미 두 차례나 실패했기에 이번만큼은 반드시 개최권을 따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지원세력은 허약하다.

국제유도연맹(IJF) 회장과 IOC 위원을 지냈던 박용성 체육회장이 스포츠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재계 대표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두 차례 유치 경험이 있는 김진선 지사가 '쌍두마차'로 유치위원회를 이끌고 있지만 정작 IOC 내부에서 표를 모을 수 있는 거물 인사가 없는 것이 평창의 최대 약점이다.

한국은 현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문대성 IOC 위원이 있지만 그는 아직 `초선' 신분으로 큰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평창의 강력한 라이벌인 독일 뮌헨은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이 유치 활동을 이끌고 있다.

일찌감치 IOC 차기 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바흐 부위원장은 IOC 내부에서 자크 로게 위원장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통하고 있다.

이런 바흐 부위원장을 상대로 IOC 내부에서 득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국내 인사가 이건희 전 회장인 셈이다.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 전 회장은 1998년 삼성전자가 IOC와 `톱 올림픽 파트너(TOP)' 계약을 맺은 뒤 날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앞서 두 차례 유치과정에서도 평창 지지표의 절반 이상을 이건희 IOC 위원이 끌어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만난 북한의 장웅 IOC 위원도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장웅 위원은 "한국에 이건희 회장만큼 영향력있는 인사가 있느냐. 이회장이 없으면 이번에도 평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도 8일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선 이건희 회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고 필요성을 공감했다.

다만 유 장관은 "워낙 예민한 사안이기에 (대통령께) 사면을 건의하려면 공감대가 보다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여부에 대해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평창유치위원회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욱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홍콩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