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있다"며 "미국 의회 및 여러 이해 당사자와 함께 노력해 협상안에 대한 가장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겠다"고 7일 말했다.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내용에 대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커틀러 대표보는 이날 한국무역협회와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동 개최한 '위기 이후의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 컨퍼런스에 참석,"한 · 미 FTA 타결 이후 미국 내에서 첨예한 공방이 있었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 · 미 FTA의 내용을 재검토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자동차업계를 비롯한 이해 당사자와 의회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 미 양국의 지도자는 FTA를 발효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우려되는 사항에 대해 한국과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논의해 한 · 미 FTA를 이른 시일 내에 발전시키고자 하는 게 우리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커틀러 대표보는 한 · 미 FTA 발효가 지연됨에 따라 미국 기업이 손해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부 업계에서 우려하고 있다"며 "최소한 한 · EU(유럽연합) FTA와 비슷한 시기에 한 · 미 FTA가 발효돼 미국 기업이 유럽 기업보다 불리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답했다.

커틀러 대표보의 발언에 대해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재협상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채 조기 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한 · 미 FTA는 양국에 실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 미 FTA와 한 · EU FTA가 거의 같은 시기에 비준되길 바란다"며 "한국의 포괄적 FTA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주의 노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어 "한 · 중 · 일 3개국 FTA에 대해 내년 초부터 타당성 조사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오설리번 EU 집행위원회 대외무역총국장은 "미국보다 EU의 비준 절차가 더 복잡하지만 내년에 한 · EU FTA를 비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우리가 비준하지 않을 협상을 타결한 적은 없기 때문에 잘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는 주요 국제기구 수장과 석학들이 참석해 위기 이후의 국제무역 질서를 논의했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보호무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최소 1~2년간 지속될 것"이라며 "보호무역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의 실업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무역장벽을 통해 일자리를 지키려는 정치적인 압력이 있다"며 "한 국가의 수입 축소는 다른 국가의 수출 감소를 뜻하기 때문에 보호주의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미 총장은 "세계 경제가 당초 우려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세계 각국이 공조를 통해 보호주의를 억제했기 때문"이라며 "보호주의가 당장 국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국수주의와 보호주의의 유혹을 받았고 정교한 장치를 통해 개도국을 차별했다"며 "선진국과 개도국 간 공정한 무역 질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