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SK에너지 울산공장.에너지 절감 설비투자를 위해 총 4000억원의 예산 집행을 앞두고 있던 생산기술실 관계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막대한 설비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방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

울산공장은 일단 비용을 최소하면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각 공정별로 부랴부랴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19개 공정개선 과제를 찾아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한 프로젝트 이름은 큰 비용 투자 없이 에너지 절감 개선 효과를 기대한다는 뜻의 'WI-PI(without investment,profit improvement)'라고 정했다.

울산공장은 WI-PI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1000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막대한 설비투자 없이 '운용의 묘'만으로 얻은 성과다.

울산공장이 맨 처음 눈길을 돌린 곳은 전체 에너지 비용의 30%(6000여억원)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증류탑.증류탑은 원유나 가솔린 등을 끓여 휘발유,경유 등의 완제품을 만드는 설비다. 몇 주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증류탑의 압력을 최소화할 경우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면서도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울산공장은 120여기의 증류탑 압력을 조절,올들어서만 300억여원의 에너지를 줄였다.


내년에는 100여기의 증류탑에 추가로 이 기술을 확대,올해보다 2배 정도 많은 600억원 이상의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의 증류탑 에너지 비용과 비교하면 10% 절감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외국 플랜트 공장이나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에너지 비용을 3~5%만 절감해도 우수 사례로 꼽힌다"며 "비용 투자없이 울산공장에서 거둔 성과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경제적인 효과를 거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고 말했다.

울산공장은 이 밖에 히터(가열로) 효율 증대,각종 설비 운전비 절감 등 나머지 WI-PI 과제를 통해 올해 총 1000억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했다.

올해 중반부터는 원래 계획했던 설비투자도 재개,추가로 15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영태 SK에너지 울산공장 부사장은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찾아 예상 밖의 성과를 거뒀다"며 "울산공장의 적용 기법은 다른 정유회사들에도 적용될 수 있어 더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