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전 회장이 물러나고 한 달 후인 지난 10월29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처음 구성됐을 때는 강정원 행장이 차기 회장을 맡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 회장으로서 강 행장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았고 강 행장 본인도 황 회장 사퇴 직후 임원과 주요 부서장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는 등 조직 다잡기에 나섰다.

정부 일각에서 강 행장이 지주 회장을 맡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KB금융지주는 외부 인사의 참여 없이 사외이사들이 회추위를 구성해 회장 후보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강 행장을 비롯해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3명이 최종 인터뷰 대상자로 정해진 지난달 20일부터였다. 이 사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 회장 후보를 정하는 방법이 합리적이지 않다면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계속해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던 이 사장은 인터뷰를 이틀 앞둔 지난 1일 면접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히기에 이르렀고 김 전 사장도 후보에서 사퇴했다.

두 후보가 면접에 불참키로 하면서 금융당국이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다시 불거졌다. 금융위원회는 회추위가 구성될 당시 KB금융 측에 회장 선임 일정을 늦춰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입맛에 맞는 인물을 KB금융 회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은행 사외이사 제도를 바꿔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을 교체한 뒤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회추위는 그룹 최고경영자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둘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예정대로 3일 회장 후보 면접을 진행했고 강 행장을 최종 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했다.

이날 최종 후보 결정 과정은 진통을 겪으리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다소 싱겁게 결론이 났다. KB금융 안팎에서는 강 행장이 회장 후보로 추천되기 위해 필요한 6표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도 돌았지만 9명의 회추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강 행장을 추대했다.

결론이 나온 시간도 당초 예상보다 일렀다. 조담 이사회 의장은 이날 오전 후보 면접 장소인 서울 명동 KB금융 본사 7층으로 올라가면서 "오늘 내에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보 면접이 시작된 지 5시간 만인 오후 2시20분 강 행장은 밝은 표정으로 면접장을 나와 취재진을 향해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전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