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업계에 사상 최대 규모인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 자진신고제도(리니언시)의 효용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SK에너지와 SK가스가 담합행위를 실토하며 제시한 진술 및 증거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리니언시를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담합을 통해 불법이득을 본 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모럴해저드에 빠진 일부 업체들이 '보험성' 리니언시로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LPG 담합 증거 허위논란 불거져

공정위는 지난 2일 전원회의를 열고 담합행위를 자진 신고한 SK에너지,SK가스의 진술과 증거 등을 근거로 LPG업계에 총 6689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SK가스가 198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E1(1894억원) SK에너지(1602억원) GS칼텍스(558억원) 에쓰오일(385억원) 현대오일뱅크(263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 가운데 리니언시 적용을 받는 SK에너지는 면제,SK가스는 절반인 993억원을 감면받았다. '관대한 처분'이라는 뜻의 리니언시는 담합행위를 자백하는 기업에 과징금을 면제해 주거나 감면(50%)해주는 제도다. 결과적으로 시장점유율 선두권인 SK에너지와 SK가스는 담합행위를 통해 가장 많은 부당 이득을 얻었으면서도 리니언시를 통해 1000억원 이상의 과징금을 면제받는 실리까지 챙긴 셈이다.

E1,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은 SK에너지,SK가스가 제시한 담합증거 사례가 명백한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공정위의 이번 전원회의에서 SK가스가 2005년 E1과 담합했다며 제시한 유일한 증거서류의 경우 시간을 짜맞추기 위해 사후에 작성된 자료임이 밝혀졌다. SK에너지가 진술한 업계의 골프회동,회식날짜 등도 다른 회사 관련자들이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제시해 논란이 됐다는 후문이다. E1,에쓰오일 등은 이를 근거로 과징금 부과의 부당성을 위한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담합 주도 업체는 '면죄부' 배제해야

이번 LPG업계 과징금 파동과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2007년 2월 10개 석유화학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합성수지 가격담합 조사에서도 최대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호남석유화학이 자진신고를 통해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같은 해 국내 설탕 3사에 대한 가격담합 과징금 처분에서는 CJ가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대가로 과징금의 절반을 경감받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기업이 자진 신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허점은 바로잡아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해 과징금을 면제받는 사례들이 폭증하고 있는 것도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업계의 이기심에 의해 변질 및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리니언시를 통해 면제받은 과징금 규모는 534억원으로 부과 과징금(638억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 간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심전심격 선의의 약속을 깨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과징금을 통해 상대 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많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무법인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현재의 리니언시 제도는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진술을 제시하는 업체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담합을 주도한 업체에 대해서는 리니언시 제도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