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럽 출범과 함께 유럽연합(EU)이 금융감독체계의 대대적 개편에 나섰다. 현행 나라별 금융감독체제에서 범유럽을 통할하는 조직을 만드는 게 골자다. 환경 및 통상분야에서 각종 법규와 규제 제정이 EU당국 중심으로 단일화된 데 이어 금융 감독과 규제에서도 사실상 '하나의 머리와 하나의 입을 가진' 단일한 유럽이 등장하는 것이다.

EU 27개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모임을 갖고'유럽금융체계 위기관리위원회(ESBR)'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최종 합의했다. ESBR에는 각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와 금융감독기구 대표들이 참여한다. 유럽 전체 금융부문에 대한 거시적 감독 역할을 맡게 되며 금융 부문이 위태로워질 때 각 회원국에 경보를 발령함으로써 위기의 심화와 확산을 막는 기능을 하게 된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주도한 크리스티앙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새로운 금융감독 시스템 구축에 EU 전반의 진정한 공조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개편안은 또 기존의 은행,보험,증권 관련 자문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이 3개 부문의 미시적감독기관을 신설하고 이를 총괄하는 '유럽금융감독시스템(ESFS)'을 설치키로 했다.

프랑스 파리에는 증권관련 감독기관을,영국 런던에는 은행 관련 감독기관을,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보험 관련 감독기관을 두도록 한 것이다.

기존의 자문위와 달리 ESFS 산하 이들 3개 감독기관은 개별 회원국 감독기관 사이에 이견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회원국 감독기관과 함께 신용평가사에 대한 직접 감독권한을 갖는 등 실권도 확보했다. 다만 각국의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일상적인 감독 · 검사 기능은 현행처럼 개별 회원국의 해당 감독기관에 주어진다.

이번 개편안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금융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했던 영국 런던의 금융가 시티 오브 런던의 위상이 급속히 퇴보됐다"며 "이제 보다 중앙집중화되고 범유럽적인 감독기구가 출현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유럽합중국 출범을 주도해온 독일과 프랑스는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명분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새로운 규제기구 창설을 주장해왔다.

반면 영국은 강력한 기구가 신설될 경우 국제금융가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런던의 영향력이 상실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 반대 의사를 표해왔지만 결국 대륙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합의된 새로운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은 유럽의회와 EU정상회의에서 협의를 거쳐 시행된다. 재무장관들은 내년 중 시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브뤼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