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조약 발효로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수세에 몰린 건 영국이다. 영국은 1973년 EU 멤버가 된 이래 EU를 주도해왔으나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에 합류하길 거부했다. 자국통화인 파운드화를 기반으로 EU 경제를 이끌고, 미국 월가에 맞서는 세계 최대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의 주도권을 잃기 싫다는 자존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영국은 유로화 출범 이후 줄곧 자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유로존을 웃돌았던 점을 들면서 유로화 도입을 거부했지만 이마저도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작년 4분기(-2.0%)부터 성장률은 유로존(-1.8%)에 연패를 당하고 있다. 올 3분기 영국의 성장률은 -5.2%로 유로존(-4.1%)보다 낮았다. 파운드화 가치도 추락을 거듭하면서 영국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1999년 파운드당 1.3유로로 출발해 2001년 1.7유로까지 치솟았던 파운드화 가치는 1.085유로(1일 현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영국 경제는 유럽 패권을 잃어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영국은 파운드화 포기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 EU대통령 선출 과정에서 유력 후보였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낙마한 것도 유로존 가입국이 아니란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또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주 '비밀회동'을 가지면서 영국이 EU의 '빅3'그룹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본조약 발효 이후에도 영국이 끝까지 파운드화를 지킬지,끝내 포기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내년에 출범할 차기 정권이 파운드화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