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격 단행한 화폐개혁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개혁 · 개방을 선택한 베트남의 전례와 유사하다.

베트남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북한의 '7 · 1조치'와 유사한 임금 및 가격 현실화 조치를 취한 뒤 심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지자 4년 만인 1985년 '10 대 1'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실제로 물가 현실화 이후 베트남을 강타한 인플레는 현재 북한보다 훨씬 심각했다. 베트남은 또 화폐개혁 이후에도 물가가 잡히지 않고 경제운용도 순탄하지 않자 1989년 가격의 완전 자유화를 선언,시장경제 요소를 대폭 도입했다.

북한이 이번 화폐개혁의 후속 조치로 어떤 것을 구상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국 북한경제는 베트남처럼 가격자유화를 통한 적극적 개방기조로 나아갈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영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그동안 흐름을 볼 때 북한은 베트남의 경제개방 과정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당국은 가격 자유화를 원치 않을 수 있지만 결국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실제로 7 · 1조치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먼저 도입한 중국 베트남에 관료나 연수생들을 보내 선진 금융기법과 금융개혁 경험 등을 연구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 화폐개혁에 이어 머지않은 미래에 금융개혁 등의 후속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화폐개혁으로 재원을 확보하면 그 다음 단계로 금융기관을 설립해 공장,기업소 등을 만드는 데 자본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2006년 초 일반인과 기업소 등을 상대로 예금 대부 결제 등의 업무를 하는 상업은행을 만들었으나 자본금 부족으로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운용자금을 마련하면 본격 가동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쫓겨난 박봉주 전 내각 총리는 농업은행 공업은행 등 다양한 금융기관 설립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번 화폐개혁 조치로 재정을 확충하고 그것이 금융개혁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화폐개혁이 북한경제의 퇴행을 가져와 결국 그 여파가 중간층 이하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