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격 담합을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금리체계 개편이나 카드사 수수료 문제 등 소비자 이익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시장 자율을 핑계대며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출금리 체계 개편 제자리걸음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양도성예금증서(CD)에 연동된 현행 주택담보대출 금리체계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2개월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은 담합 우려 때문에 공동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데 난색을 표시하고 있고 금융위원회 역시 가격지도에 따른 부담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 입장을 개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금리 체계가 은행의 조달 구조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등 현실과 괴리가 있지만 자칫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수익문제에 관여한다는 책임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만큼 논의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최근 금융연구원이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예금은행의 가중평균 수신금리와 제3기관이 공표하는 은행 자금조달 금리의 평균치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채택 여부가 불확실하다. 금융감독원도 개별 은행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발을 빼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가격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모든 제품의 가격을 일일이 정해줘야 하고 시장의 발전이 지체되는 결과를 낳는다"며 직접개입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 때문에 대출금리 체계 개편 논의는 다시 금융투자협회가 고시하는 CD 금리의 산출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안을 내놓는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카드 수수료율은 생색내기 그쳐

소비자 불만이 높았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수수료율 인하는 가격 담합을 의식한 금융당국이 소극적인 태도로 나서면서 당초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신용카드에 따라 1~3%포인트 인하한다고 했으나 시장점유율이 높은 주요 신용카드의 경우 인하폭이 1%포인트대에 그쳤다.

국민은행은 연 25.26%인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을 내년 상반기 중 1.57%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신한카드는 연 24.91%에서 1.2%포인트,삼성카드는 연 25.31%에서 1.2%포인트로 각각 낮추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연 25.23%에서 1.73%포인트,농협은 연 27.01%에서 1.81%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당초 금융당국이 기대한 대로 2%포인트 이상 이자율을 낮춘 곳은 외환은행 비씨카드 하나카드 정도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이자율 인하폭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금융당국이 공정위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은 취급수수료(연 4%대)를 절반 정도로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공정위가 전방위 담합 규제에 나섬에 따라 카드사들이 자발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하도록 방침을 바꾼 결과라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종의 가격 체계인 취급수수료를 감독당국이 나서 일제히 얼마씩 인하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담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업계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심기/이태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