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들이 경영진용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30대 그룹 가운데 현대중공업에 이어 신세계가 30일 새 경영구도를 출범시켰고,삼성 현대 · 기아자동차 LG SK 등 4대그룹도 막바지 인사 작업에 나섰다.

재계 관계자들은 올 연말 주요 그룹의 인사 키워드로 '오너가(家) 책임경영체제 강화'와 '세대교체'를 꼽고 있다. 정용진 총괄 대표체제로 전환한 신세계와 비슷한 방향의 인사가 잇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의 여파에서 벗어나 미래 먹을거리들을 찾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신사업 발굴과 연계한 인사 쇄신이 뒤따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인사에서 주요 기업들이 '경기침체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최고경영인(CEO) 교체폭을 최소화한 점도 세대교체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고 있다.

◆오너 책임경영 체제 본격화

창업 3~4세들이 지금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 재계 인사는 "오너 책임경영의 장점은 단기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먼 미래를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신사업을 시작하거나 사업구조를 바꾸려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고참 전문경영인들이 맡던 임무 중 일부를 오너가 경영인이 직접 담당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 · 기아차그룹은 지난 8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글로벌 빅5 도약'을 진두지휘하도록 했다. 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마케팅,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현대 · 기아차 그룹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며 "주요 그룹 현안을 매듭짓기 위해 1~2주 간격으로 해외 출장에 나선다는 점도 정 부회장의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대 · 기아차 그룹은 12월중 후속 임원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모비스의 지주회사 전환을 앞둔 시점임을 고려할 때 정 부회장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년 주주총회에서 정 부회장이 현대차 대표를 맡을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정기 인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최근에는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 등 글로벌 기업의 수장들과 잇따라 만나며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이 전무가 올해 말 인사에서 상위 직급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2007년 전무로 승진,올해 말로 승진 연한을 모두 채우게 된다.

LG그룹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과장의 행보가 주목거리다. 구 과장은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마치고 지난달 LG전자로 복직,주요 부서를 돌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대대적인 경영진 개편을 실시해 인사 수요는 크지 않은 편이지만 몇가지 변수는 남아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고참 전문경영인 교체폭도 관심사

고참 전문 경영인들의 교체 폭도 연말 인사의 관심거리로 꼽힌다. LG그룹은 텔레콤 등 통신 계열 3개사의 합병 등으로 인해 CEO들의 연쇄 이동이 예상된다. 삼성,SK 등도 사업구조 재편에 따른 CEO 교체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년 조선맨'으로 꼽히는 최길선 사장이 현직에서 물러난 현대중공업처럼 이미 세대교체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기업도 있다.

오너가의 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전무는 지난 9월부터 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임원을 겸직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호텔신라와 에버랜드 외식사업부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구체화하는 것이 이 전무에게 맡겨진 임무다. 이 전 회장의 둘째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의 역할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그룹에서는 고 정몽헌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주목받고 있다.

송형석/김용준/박동휘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