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미국 측이 자동차 분야에서 추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진단했다. 기존 협정문 그대로 의회 비준을 받기가 힘든 미국의 정치 상황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 정부는 무조건 거부하는 강경론보다는 일부 요구는 수용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차 시장점유율 낮지 않다

미국 측은 한국 시장에서 미국차가 덜 팔리는 무역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시장점유율을 보면 EU산 자동차는 2004년 1.2%에서 지난해 3.3%,일본차는 0.6%에서 2.1%로 각각 확대됐다. 반면 미국차는 0.4%에서 0.7%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국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7.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기계산업팀장은 "실질적인 미국 회사인 GM대우를 포함하면 미국차의 한국 시장점유율은 0.7%에서 7.7%로 높아져 한국차의 미국 시장점유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의 자동차시장 규모는 한국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똑같은 점유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추가 요구 가능성 높아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 교수(정석물류통상연구원장)는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는 대통령 발언이 '물꼬'를 터줬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미국 측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당이 공화당 때 체결한 한 · 미 FTA를 순순히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특히 FTA에 반대하는 미국 자동차노조 등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한 · 미 FTA를 고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는 것.미국이 최근 중국산 타이어나 강관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주의 경향을 보이는 것도 추가 요구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어떤 요구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미국이 요구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친환경차(하이브리드카)를 제외하고 모든 차종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등 우리가 더 해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생색용으로 관용차를 사주거나 미국의 트럭 관세 철폐 시기를 기존 10년에서 좀 더 늘려주는 것 등 미세한 부분 외에는 미국이 더 얻어갈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 측 요구는 뾰쪽한 방법이 없는데도 시장점유율을 높여달라는 '정치적' 액션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태호 외교통상부 FTA정책국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손댈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요구를 못해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수용 등 유연하게 대처해야

우리가 '재협상은 절대 없다'는 경직된 자세를 보이면 미국에서의 비준 논의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만약 미국 건강보험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아 중간선거가 실시되는 내년 11월까지 한 · 미 FTA가 현안으로 부각되지 않는다면 비준이 언제될지 기약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선 미국 측의 요구를 경청하겠다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기존 협상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게 비준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조정실장은 "지금은 시나리오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면서도 미국 측에 어느 정도 '정치적인 명분'을 주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