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담합 제재 강화에 기업들 반격

공정거래위원회가 카르텔(담합)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기업들이 주무부처의 행정지도에 따른 공동행위를 과도하게 제재하고 있다며 반격하고 나섰다.

기업은 인허가 및 관리감독권을 보유한 기관의 행정지도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도 공정위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법령상 구체적인 근거 없이 사업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는 행정지도의 결과로 담합이 이루어졌다면 그 행위는 위법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카르텔 제재 강화..기업들 반발


22일 공정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기업의 담합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금액은 총 1조108억 원(원심결 부과기준)이다.

카르텔국이 신설된 2005년부터 작년까지 과징금 부과금액이 1천억~3천억 원 수준이다가 올해는 1조 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들어 음료업체 가격담합(255억 원)과 신용평가사 수수료 담합(42억 원), 침대업체 가격담합(52억 원) 등 담합사건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이미 부과했다.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담합에 대해 1조3천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출고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는 11개 소주업체에는 심사보고서를 통해 총 2천263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통보한 상태다.

공정위는 LPG업체와 소주업체로부터 의견을 받아 내달 전원회의를 열어 과징금 규모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들 업체에 통보한 과징금 규모는 심사관의 의견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주무부처의 행정지도에 따랐을 뿐으로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류산업협회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소주업계는 스스로 가격 인상을 할 수 없고 국세청의 행정지도 안의 범위에서만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며 "따라서 소주가격 담합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최근 과징금을 부과받은 신평사 중 한신정평가도 공정위의 제재에 대해 "평가 수수료 체계와 관련 행정지도의 존재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신용정보법 제45조 등에 따라 금융감독당국은 신용평가사에 대해 감독 및 검사권을 보유하고 과거 당국이 수수료 체계 변경을 행정지도한 관행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법령에 따른 정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적용 제외를 규정한 공정거래법 제58조를 고려해 제재 수준을 결정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위 "행정지도 따라 담합해도 위법"

행정지도가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의 원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 부당한 공동행위는 위법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확고한 방침이다.

공정위가 운용하는 '행정지도가 개입된 부당 공동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보면 사업자들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행정기관의 법령에 따른 행정처분이 개입된 경우에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상 구체적 근거가 없는 행정지도에 근거해 담합이 이루어지면 원칙적으로 위법하다.

행정기관이 사업자에 개별적으로 행정지도를 했는데 사업자들이 이를 계기로 별도의 합의를 해도 담합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행정기관이 가격 인상률을 5% 이하로 하도록 행정지도를 했는데 사업자들이 별도의 합의를 통해 가격 인상률을 5%로 통일하면 담합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

법원의 판례도 공정위의 이 같은 지침을 지지하고 있다.

퇴직보험상품의 금리를 공동으로 결정한 행위로 과징금(140억 원)을 부과받은 13개 손해보험사가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말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시내전화요금 가격합의로 과징금(1천152억 원)을 받은 KT와 하나로텔레콤도 과열경쟁을 우려한 주무부처(당시 정보통신부)의 요구사항에 따른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6월에 최종 패소했다.

기업들은 그러나 행정지도를 하는 기관과 담합을 제재하는 공정위가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인허가 및 감독권한을 가진 규제기관에선 과열 경쟁을 하지 말라고 지도하는 반면 공정위는 이에 근거한 행동에 대해 가차없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선 행정지도하는 정부와 담합을 조사하는 정부가 따로 있는 셈"이라며 "예컨대 소주업계는 국세청, 항공업계는 국토해양부가 규제기관이어서 따를 수밖에 없는데 공정위는 행정지도라도 담합으로 문제가 될 거 같으면 업체들이 알아서 따르지 말라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부처와 기관 간에 사전에 행정지도에 경쟁제한적 요소가 없는지 협의해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김호준 기자 kms1234@yna.co.kr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