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힘의 상징이며 자기 표현이자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도구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토머스 하인은 쇼핑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또 쇼핑은 일종의 책임(가족 · 친지를 위한)과 발견,심리적 불안 해소,축하,편의 등 다양한 이유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책임과 편의를 위한 소비라면 옷과 장신구는 자기 표현과 축하용인 수가 많다. 전자가 일정한 가격대와 고른 수요층을 확보하는 대신 오랜 애프터서비스 같은 부담을 안는 반면 후자는 수요가 적은 대신 전자의 부담에서 한결 자유롭다.

일본과 미국 시계의 가격경쟁력에 밀려 위기를 맞았던 스위스 손목시계는 보석화되면서 살아났거니와 패션과 주얼리는 명품화되면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낸다. 티파니 반지는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일반 제품보다 몇 배 비싸고,바카라와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로 여성들을 사로잡는다.

김연아 귀걸이가 화제다. 김연아가 미국에서 열린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우승 당시 달았던 귀걸이가 인기를 끌면서 해당 브랜드 매출이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연아 귀걸이는 '제이 에스티나(J.Estina)'.시계로 유명한 로만손이 2003년 론칭한 패션주얼리 브랜드다.

제이 에스티나가 내세운 건 매스티지(명품과 대중제품의 중간급) 주얼리.혼수예물과 프랜차이즈 업체 중심 중저가 패션 액세서리 시장 밖에 없던 국내 시장에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위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21세기 신왕족주의 지향'이란 브랜드 개념으로 뛰어들었다.

제이 에스티나는 이탈리아 공주였던 조반나 에스티나의 애칭.작은 티아라(왕관)를 쓰고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티아라라는 상징과 스타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홍보,장롱에 넣어두는 혼수예물 대신 실용적 제품을 구입하려는 젊은층의 소비패턴과 맞물리면서 급성장했다.

여기에 중년층 대상의 '이에스 돈나' 역시 관심을 모으면서 주얼리 매출만 연 90%씩 성장했다고 할 정도다. 로만손은 최근 연아 귀걸이 한정 예약판매에 들어가는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화를 통한 종합 패션그룹 도약이라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시계와 주얼리는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만큼 잘만 하면 얼마든지 명품으로 만들 수 있다. 연아 귀걸이가 고급소비재 불모지인 한국을 세계적 명품 국가 대열에 올려놓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