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머리에 양손 끝마디를 살짝 가져다 대세요. 윗부분부터 아래로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마사지에 들어갑니다. "

지난 11일 오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6층 세미나실. 머리에 두건이나 모자를 쓰고,환자복을 입은 여성 40여명의 시선이 강단 앞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고정됐다. 각종 암과 투병하고 있는 이들 환자 가운데 3~4명은 링거액을 맞으면서 강의에 열중했다. 이 강의는 아모레퍼시픽의 사회공헌활동인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 up your life)'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비록 암으로 고생하고 있더라도 외모가꾸기를 통해 삶의 자신감을 되찾아주자는 취지다. 강의는 피부 관리법부터 헤어 연출법,화사한 분위기를 내는 메이크업 요령에 이르기까지 2시간가량 진행됐다. 환자들로선 두 시간을 앉아 있는 게 꽤 힘들었지만 모두 지친 기색없이 밝고 환한 표정들이었다.


'자신감과 희망을 찾아드려요'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3일부터 26일까지 14개 병원을 돌며 600여명의 환우들을 대상으로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모레 카운셀러들이 직접 나서 항암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탈모나 피부 손상 등 외모 변화를 겪는 여성 암환우들에게 외모 가꾸기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강의 후 곧바로 환자들끼리 짝을 지어 직접 메이크업을 시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이어졌다. 준비된 화장품 세트는 아모레퍼시픽의 프레스티지 브랜드 '헤라'에서 수술과 각종 치료로 인해 건조해지고 어둡게 변하는 환자들의 피부상태를 고려해 특수 제작된 제품이다. 치료 중 부각될 수 있는 잡티를 커버해주는 컨실러,환하고 입체적인 피부 표현을 위한 하이라이터와 각종 색조 제품으로 구성됐다. 처음 강의실을 찾았을 땐 약간 지치고 어두웠던 얼굴들이 30분이 지나자 어느 새 모두 화사하고 생기있게 변했다.

행사에 참여한 임모씨는 "암 치료를 받으면 머리는 물론 속눈썹까지 온갖 체모가 다 빠진다"며 "이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해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김모씨는 "오랜만에 화장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며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동안 위축되고 어두웠던 마음도 예쁘게 화장한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안승도 아산병원 암교육센터 실장은 환우들에게 "암 치료에는 방사선 치료뿐 아니라 치료 전후 환자들이 삶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도움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며 "환자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美의 전도사'가 '나눔의 전도사'로

아모레퍼시픽이 주최하고 한국유방건강재단,한국유방암학회,대한종양간호학회,한국여성재단이 후원하는 이 캠페인은 지난해부터 매년 상 · 하반기로 나눠 실시되고 있다. 올해 행사 규모를 두 배로 확대했을 정도로 참가자들과 병원 측의 반응이 좋다는 게 아모레퍼시픽 측 설명이다. 올해엔 화장품 방문 판매원인 아모레 카운셀러와 아모레퍼시픽 소속 교육강사 등 25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들은 서울 · 부산 · 대구 · 광주 · 대전 등 5개 지역 환우 1200명을 대상으로 총 30회 강좌에 걸쳐 여성 암 환우들을 위한 '미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서울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자원봉사단 발대식을 갖고,여성암에 대한 기초 지식과 환자에 대한 이해 교육,메이크업 실습 등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캠페인을 준비하던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암을 겪은 뒤 외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관리방법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였다. 환우들은 그동안 화장이 언제부터 가능한지,치료 중 피부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궁금증이 많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임재연 아모레퍼시픽 기업문화팀장은 "한국유방건강재단과 함께 2000년부터 유방암 예방 및 인식 개선을 위한 핑크 리본 캠페인을 전개해 오면서 유방암뿐만 아니라 각종 암으로 고통받는 모든 여성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고민해 왔다"며 "해외에 암 환자들의 외모 관리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한국 상황에 맞게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선도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재능과 자원을 활용한 '재능 나눔'을 실천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 같은 캠페인을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자신감 찾는 환자 많아져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장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여성 암환자의 90%가 암 치료에 따른 외모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 40%가량은 비교적 자주 이런 현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외모 가꾸기 프로그램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성과는 상당했다. 행사에 참여하기 전 '암 치료로 일어나는 외모 변화에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한 환자가 56.5%였지만,행사에 참여한 뒤에는 그 비율이 48.9%로 낮아졌다.

외모 가꾸기 교육 프로그램이 암환우가 자기 자신의 외모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아모레퍼시픽은 캠페인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고 한다. 권영소 아모레퍼시픽 방판부문장은 "모든 여성들이 아름다움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암으로 고통받는 고객들의 외면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내면적 아름다움까지 보듬어 환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자긍심 함양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