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 사진) 의장이 16일(현지시간) 뉴욕이코노믹클럽 초청연설을 통해 "달러 가치 변동을 계속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강한 달러가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1951년 합의에 따라 미국 정부 관계자 중 달러 가치와 관련한 공식 언급은 중앙은행 총재가 아닌 재무장관만이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달러 환율이 지난 1년여 동안 큰 폭으로 움직였다"면서 "달러 가치 변동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약세 탓에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국가들의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내놓은 발언이다. 류밍캉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장관)은 지난 15일 "달러 약세와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글로벌 자산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거대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시장과 이들 국가를 일단 안심시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셈은 금리를 인상해 달러 가치를 떠받치겠다는 메시지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환율 변동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강해지면 달러도 강해지고 글로벌 금융시장도 안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지난해 금융 · 경제위기가 엄습,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는 바람에 달러가 강세를 보였으나 금융시장과 경제가 안정되자 투자자들이 달러 이외의 투자처로 옮겨가면서 달러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그의 발언에 달러 가치는 장중 반짝 상승세를 보이다가 다시 하락했다.

버냉키 의장이 달러 환율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원유와 원자재 가격 등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는 미국 경제가 내년엔 완만한 성장이 기대되나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이 여전하고 실업률이 높은 점 등 심각한 도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래에 경기가 후퇴할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상당 기간'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