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과 폴란드를 다녀왔다. G7(선진 7개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 중인 영국의 실상이 궁금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박지성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맨체스터 방문 일정도 포함돼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최근 외신들이 전하는 영국 경제 소식은 우울하다. 독일 일본 프랑스에 이어 미국이 지난 3분기에 플러스(3.5%)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영국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일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3%에서 -4.6%로 하향 수정했다. 영국의 3분기 실업률은 7.8%에 달했으며,16~24세의 청년 실업률은 19.8%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금융산업에 '올인'해 온 영국은 지난해 9월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영국을 실제 둘러보니 소문만큼 경제난이 심각하진 않은 듯했다. 예년보다 일주일 이른 10월 말부터 시작된 유통업체들의 크리스마스 세일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런던 해롯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테스코의 매장은 평일에도 쇼핑객이 몰려 활기가 넘쳤다. 런던 교외에 있는 켄싱턴 슈퍼스토어의 그레그 세이지 점장은 "품질 좋은 물건을 싸게 판 결과 올 매출이 전년보다 7% 늘었다"며 "내년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펍이나 극장가도 주말 저녁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지난 3일 찾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장의 7만여 관중석도 꽉 찼다. 박지성이 결장해 아쉬웠지만 맨유와 CSKA 모스크바의 경기는 감동적이었다. 열광하는 영국인들의 얼굴에서 '불황'의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진 않았지만 유럽 대륙도 상황은 비슷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10년 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했다. 2004년 EU 가입 후 외자 유입이 급증하고 있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거리는 크리스마스 행사로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외신들은 올 3분기 들어 동유럽 신흥국들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지난 3분기에 각각 0.8%,1.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유럽을 둘러보면서 비관론자들이 전망하는'더블 딥(경기침체 후 일시적으로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하는 현상)'은 기우(杞憂)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공업도시인 맨체스터에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었다. 런던에 이어 두 번째로 학생이 많은 맨체스터대학 캠퍼스는 연구 열기로 뜨거웠다. 맨체스터는 세계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달린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붕괴를 전망한 무대로 삼은 도시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1867년 펴낸 '자본론'에서 방직공장에서 하루 16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노동착취 등을 거론하면서 자본주의가 무너지고,사회주의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의 관심은 내년에 경기가 살아날지에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더블딥' 논쟁이 한창이다. 미래를 장담할 순 없지만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난해 금융위기 직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100년 만의 대공황'도 '설(說)'로 끝났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최인한 생활경제부 차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