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 개발(R&D) 자금을 배분하는 사람,평가하는 사람,그리고 수혜를 받는 사람들이 결합해 새로운 진입과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삼위일체'를 깨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장호완 지질자원연구원장)

"연구 과제를 수행하다 실패하면 2~3년간 연구 참여가 제한되다 보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연구원들이) 목표 자체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 도전적인 과제는 실패하더라도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한문희 에너지기술연구원장)

지난 15일 오후 대덕연구단지 내 기계연구원 국제회의장.취임 이후 R&D 시스템 혁신을 줄곧 강조해 온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부 출연연구소 원장들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정부 R&D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자' 역할을 해 온 그가 현장의 R&D 최고책임자들과 함께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에 나선 것.

"오늘은 순서도 없으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달라"는 최 장관의 말이 끝나자 원장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작심하고 한 발언도 적지 않았다.

R&D 자금 배분자(공무원),과제 평가자(평가기관),자금 수혜자(연구원) 등이 '끼리끼리' 한데 엮여 공정한 경쟁과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장 원장의 의견에 대해 최 장관은 "아주 정확한 지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최 장관은 이어 "이런 것을 깨는 게 R&D의 성과를 높이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런 얘기는) 대놓고 못했지만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과감한 연구 과제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연구 풍토를 걱정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연구 과제가 진행되는 도중에라도 계획 변경과 중단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무하 한국식품연구원장은 "(정부가) 말로는 실패를 수용한다고 하지만 제도적인 보장이 없어 연구원들이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계속한다"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이에 대해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투자"라며 향후 평가 시스템 개편 방안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경쟁'에 대한 연구원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장관은 "칸막이를 없애고 경쟁을 감수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감수해야 한다"면서 "대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 연구원의 노조는 대부분 민주노총에 속해 있다. 그런 이유로 정작 최고책임자인 원장들의 재량권이 약해 각종 비효율과 무사안일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문기 전자통신연구원장은 "원장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무하 원장은 "연구원들은 강한 노조의 힘으로 연구비나 연구환경을 대학보다 좋게 만들었고,강한 노조의 힘으로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지내왔다"며 "이런 풍토는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기관장에게 재량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