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회색시장'으로 불리는 자금의 메카 명동.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두 명동과의 연을 놓지 않고 있으며, 금융권 또한 명동의 시장 동향 자체를 하나의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기업 여신 대부분이 시중금융권에서 조달됨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위력이 발휘되는 것은 명동이 제도권이 아님에도 정보력에 있어서는 어느 기관보다도 빠를 수 있으며 그런 일련의 움직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명동의 한 어음 중개 사무실에는 A사에 관한 어음할인 문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A사의 발행 어음을 할인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는데, 뜻밖에도 예상외의 높은 금리를 제시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인 의뢰자는 "그럴리가 없다"면서 다시 한 번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개 사무실에서는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사단법인 기업가치평가협회에 의뢰해 정확히 분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동명이사(同名異社)로부터 비롯된 해프닝이었음이 드러났다.

16일 기업신용정보제공업체인 중앙인터빌(http://www.interbill.co.kr)에 따르면 B사는 2008년 계열사간 인수합병 등의 방법을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원활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를 발생시키기 위해 재무적으로 탄탄한 신설 법인을 설립했다.

그런데 신설 법인명을 B사의 전신 기업명으로 사용했다.
이와 관련, 중앙인터빌 강천규 부장은 "보통 명동업자들은 회사명을 통한 기업 검색을 주로 하기 때문에 간혹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회사의 정보를 검색하기도 한다"며 "그럴 경우 사업자 등록번호로 조회한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B사의 경우는 2007년 숙명여대 근처에서 PF를 한 번 일으킨 이후 은행업계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 PF가 원활치 못했다"면서 "그러나 2008년 내부적인 계열사 통폐합 및 A사 신설을 통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은행권에서 좋게 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A사의 지주회사인 B사의 어음 할인 금리가 높은데 대해 강 부장은 "일반적으로 지주회사의 금리는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의 금리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면서 "B사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자 등록번호를 통해 A사의 존재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고 말했다.

강 부장은 "단순히 B사의 재무상태만 봐서는 결코 낮은 금리가 형성될 수 없다"며 "낮은 금리는 고사하고 할인 자체가 안될 수도 있지만, B사의 오너의 성향이나 업계 소문으로 그나마 할인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분석의 전문가라고 하는 명동의 업자들도 실수는 있는 법이다.
명동의 정보들은 소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정보 속에서 종종 보석 같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또 오랜 시간 지속돼온 손실에 대한, 특히 기업의 부도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좀 더 확률이 높아진 정보들이 돌아다닌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고 추가적인 대출을 받아야 되거나 제도권에서 거절된 기업들이 명동을 찾기에 명동에서는 기업의 은밀한 재무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동에서도 쉽게 자금을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형화된 제도권의 대출심사 보다 더 까다로운 비정형화된 요소들까지 함께 고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명동에서는 금융당국의 보도된 내용을 통해 자체적인 조사를 이뤄 개별기업을 역추적 할 수 있는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중앙인터빌이 제공하는 명동어음금리 역시 기업평가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자금의 메카'인 명동 역시 세상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며 변화를 길을 걷고 있다. 보다 정확하고 근거 있는 정보를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빙이다. 명동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정보의 색깔도 형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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