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금을 많이 보유한 개인이나 기관은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다.

전세계에서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어딜까.

정답은 미국 정부다.

13일 CNN머니에 따르면 미 재무부가 보유한 금은 2억6천150만 온스(약 7천400t)에 달한다.

미 정부의 금 보유량은 전세계 각국 정부가 보유한 금의 총합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영화 `다이하드3'의 소재로 다뤄졌던 것 처럼 맨해튼 소재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지하 24m 아래 수장고에는 약 2만5천개의 금괴가 보관돼 있다.

그러나 뉴욕연준의 지하금고에 보관된 금은 미 재무부 소유 금의 일부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켄터키주 포트녹스에 소장돼 있다.

금의 최근 시세인 온스당 1천100달러로 처분하면 미 정부는 2천888억달러의 현찰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금을 처분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저 금괴위에 엉덩이를 걸친 채 무한정 지낼 작정이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 달러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각국 정부들이 앞다퉈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이 400t의 금을 매각키로 하자 인도 중앙은행이 220t, 스리랑카 중앙은행이 5.3t을 사들였다.

올해 2.4분기에 전세계 중앙은행은 12년만에 처음으로 금을 순매수했다.

`금: 과거와 미래의 돈'이라는 책의 저자인 네이선 루이스는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지폐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지만 금의 가치는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금은 금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금 가격이 크게 등락하기는 했지만 14세기 중반 이후 750년간 금의 구매력은 꾸준히 상승했다.

수세기 동안 금은 국제교역에서 기준통화 역할을 했다.

지금도 뉴욕연준의 지하 수장고에는 각국 중앙은행이 예치한 금이 구획별로 보관돼 있다.

국가간 자금결제가 이뤄지면 금괴를 구획에 따라 옮겨두는 식으로 금의 소유가 바뀐다.

미 재무부는 장부상 금 가격을 온스당 42.22달러로 책정해두고 있다.

현재 시세의 약 4%에 불과한 가격이다.

2차대전후 국제통화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는 온스당 35달러였으나 미국이 금의 태환을 거부하면서 금본위제가 와해된 지 2년후인 1973년 미 의회가 이 시세를 42.22달러로 올린 후 지금까지 불변이다.

지금의 금 시세는 장부가격의 26배에 달하는데도 왜 금을 시세대로 처분해 이익을 챙기지 않을까?
미 정부가 금을 팔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우선 심리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미 정부가 보유 금을 내다팔면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미국이 금을 다량 보유할수록 미국민과 시장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금본위제가 폐지된 지 거의 40년이 흘렀지만 실물자산인 금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금을 팔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변동성 때문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총리는 자신이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던 1999년부터 2002년 사이 영국 정부 금보유량의 60%에 해당하는 400t의 금을 팔아치웠다.

당시 금의 매각가격은 물가상승분을 감안하더라도 온스당 275달러에 불과했다.

10년만 더 기다렸다면 4배 가까운 돈을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영국 재무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지금 온스당 1천100달러에 금을 팔고 난 후 내년에 금값이 온스당 2천달러가 되면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을 팔지 않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는 보유금을 몽땅 처분해도 재정에 별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간 재정적자가 1조4천억달러가 넘고 경기부양자금으로 7천870억달러를 쏟아붓는데다 구제금융 자금으로 7천억달러를 책정하는 마당에 2천900억달러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미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비롯해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이 있기 때문에 금을 굳이 팔아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이 금을 팔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 국채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느라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을 처분하면 여타 국가 중앙은행의 수중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국 중앙은행의 자산보유 구성에서 금의 비중이 높아지고 미국 국채의 비중은 낮아질 수 있다.

국채를 팔아 경기부양자금과 구제금융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빚쟁이 미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