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매파(금리인상론자)에서 비둘기파(금리인상 반대론자)로 돌아선 것 같다. '

12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동결 및 이 총재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시장에서 나온 평가였다. 이 총재가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지켜보며 금리인상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그 배경이었다.

글로벌 경제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 기미를 나타내곤 있지만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려면 멀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3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연율 기준으로 3.5%를 기록해 서프라이즈 수준을 나타냈지만 4분기부터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특히 10%가 넘는 실업률로 소비회복을 장담하기 힘든 데다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경기부양책을 오래 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내년부터 경기가 다시 추락하는 더블딥 논쟁이 한창이다.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유럽이나 일본도 대동소이한 실정이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만약 미국이 연이은 성장률 서프라이즈를 기록하지 못한다면 한은이 내년 1분기에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선진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국내 경제의 회복 탄력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분기와 3분기의 성장률은 전기 대비 기준으로 각각 2.6%와 2.9%에 달했지만 4분기엔 큰 폭으로 둔화될 것이란 게 그의 진단이다. 선진국에 비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의 규모가 컸고 시작도 빨랐지만 대신 일찍 종료되기 때문에 재정의 효과가 4분기부터 떨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 총재가 지난 9월 금리인상 불가피성을 강조하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는 수위를 대폭 낮춘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물가가 2% 수준으로 안정돼 있고 그간 우려됐던 부동산시장의 불안이 진정됐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더불어 이 총재가 최근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잇달아 참석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을 절감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은 신중해야 하며 내년 G20 의장국으로서 출구전략을 펼 때 국제공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명박 대통령 및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생각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