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공정거래위원회가 말하는 카르텔(담합)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

12일 공정위 6층 전원회의실 앞에서 액화석유가스(LPG) 회사의 한 관계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회의실에서는 LPG 업체들의 카르텔 형성 여부에 대해 공정위 위원과 업체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1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과징금이 매겨질 것이라는 소문에 공정위 건물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인 분위기였다. 비단 LPG 업계만 이날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아니었다. 공정위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소주업계 주유소 제약사 대학 등도 마찬가지였다. 조사가 확대되면서 공정위의 일방통행식 처리를 호소하는 관련 업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정위의 객관성 논란

이번 LPG 업체들에 대한 조사의 경우 객관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이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국정감사에서 "1조원의 과징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원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집행당국의 수장이 담합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하는 바람에 독립적인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기 힘들어졌고,설사 소신 있게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객관성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담합에 대한 구체적인 판정 기준이 업계의 현실이나 관행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LPG의 경우 공급 회사들이 수입가격과 관세,환율 등을 빼고 나면 가격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8%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담합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위의 '몰아치기'식 조사가 가뜩이나 한국 기업들의 동향에 민감한 해외 경쟁당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무더기 카르텔 적발이 "한국 기업들은 상습적으로 카르텔을 일삼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실제 국내 대표 수출기업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담합 판정을 받으면 해외에서도 비슷한 케이스로 조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리니언시(Leniency)도 검증 필요

공정위의 카르텔 규제가 늘어나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서는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대상으로 휴대폰 냉장고 부문의 담합을 둘러싼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상대 기업에 '과징금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섞여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해석이다. 미국 같은 경우 리니언시를 신청한 기업에 대해 거짓 정보 제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진술을 철저하게 검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해 리니언시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크다.

담합이 확실치 않은 경우에도 '혹시나'하는 생각에 미리부터 겁을 먹고 공정위에 리니언시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경쟁법 전문 변호사는 "이런 것을 두고 '보험성 리니언시'라고 하는데 업계 내부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함으로써 시장의 건전질서 정착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리니언시 제도='관대한 처분'이라는 뜻의 용어로 '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제'로도 불린다. 먼저 자백하는 기업에는 죄를 묻지 않거나 줄여주겠다고 선언,카르텔 내부의 고발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담합을 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자백을 않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믿지 못해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 공정위는 담합 행위를 한 기업이 1순위로 자진 신고하면 100%,2순위로 신고하면 50% 수준의 과징금을 면제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