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시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이온 레이크타운'(Aeon Laketown).지난해 10월 일본 1위 유통기업인 이온그룹이 뉴타운으로 조성된 사이타마현 고시가야시에 지상 3층,매장 면적 21만8000㎡(6600평)로 문을 연 일본 최대의 복합쇼핑몰이다. 부산 센텀시티나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2.5배 규모다. 이렇게 거대한 쇼핑몰 안팎에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가 있다. 바로 '친환경'이다.

몰(mall) 중앙통로로 들어서면 천장에 달린 울긋불긋한 컬러의 둥근 공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재가 고급스러울 것 같지만 아티스트 헤스 내쉬가 버려진 페트병을 오려서 만든 '화원'이란 예술품이다. 폐(廢)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90여개의 창작품들이 몰 곳곳에 전시돼 있다.

몰 지붕에는 온통 태양전지판이다. 연간 41만㎾의 전력을 만들어내는 태양전지판을 모두 합치면 넓이가 4000㎡로 축구장의 절반을 넘는다. 일부 벽면에는 '천연 단열재'인 푸르스름한 이끼가 깔려 있다. 이를 통해 여름엔 냉방 손실을,겨울엔 난방 손실을 줄여 에너지가 절감된다. 주차장에는 최근 시판에 들어간 전기자동차 충전소까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오미야 토모야씨는 "쇼핑몰이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환경의 중요성을 배울 것 같다"며 "얼마 전 아이와 함께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친환경 공예품을 만드는 이벤트에도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 쇼핑몰의 나카지마 유미코 에코(eco)사업부 과장은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시설 · 조형물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부들을 대상으로 폐식용유 수거 캠페인 을 벌이는 등 소비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합쇼핑몰이 성숙기를 맞은 일본 홍콩 미국 등 선진국에선 친환경,동양철학,전통미 등 특정한 컨셉트로 차별화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신개념 복합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복합몰은 초기에 단순히 소매점 위주로 일부 식당,영화관 등을 모아놓은 형태를 거쳐 다양한 편의 · 오락시설과 이벤트로 엔터테인먼트와 휴식의 요소를 강화한 2세대 쇼핑몰로 변모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성있는 컨셉트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복합몰 3.0'시대로 진화하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복합몰들이 다른 복합몰과 차별화하기 위해 특정 테마를 내세워 몰 특유의 문화를 개발하고 이에 맞춰 통로,산책로,공원 등을 고객들이 오래 머물고 싶도록 쾌적하고 독특한 환경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10월 홍콩 침사추이 카오룽역 인근에 개점한 '엘리먼츠'(Elements)는 음양오행 사상을 전체 매장과 인테리어에 접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오행사상에서 우주의 생성 · 소멸을 결정하는 5가지 원소인 물(水),금속(金),흙(地),불(火),나무(木)를 테마로 구역을 나눴다. 각 구역은 테마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조형물,휴식공간으로 꾸미고 입점한 매장도 공간 특성에 조화시켰다.


'금속'구역에는 고급스러운 금속 재질의 인테리어와 대형 공예품들로 장식돼 있고 주로 에르메스,프라다,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브라이언 우이 운영매니저는 "사람들이 대자연에 한발 다가간 느낌을 즐기도록 전체 공간을 디자인했다"며 "이 같은 컨셉트를 부각시키려고 이름도 엘리먼츠(원소들)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2007년 3월 도쿄 롯폰기에 들어선 초대형 복합타운 '도쿄미드타운'의 '갤러리아'는 5층 건물 전체가 쇼핑공간이 아닌 동양미술관 같은 은은한 느낌을 준다. 통로는 대나무와 화지(일본 전통종이)로 꾸며졌고 150여개 입점 매장들은 모두 나무색깔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로 분위기를 맞췄다.

미드타운 부지의 40%를 차지하는 녹지 공원에는 추상적인 미술작품들이 놓여져 있다. 50대 후반의 마츠이 나오미씨는 "갤러리아에서 녹지공원을 바라보면 매우 아름답다"며 "전체적으로 고풍스런 일본식 정원 같은 느낌이 좋아 자주 온다"고 말했다. 미드타운 PR담당인 재일동포 신화선씨는 "미드타운은 도심 안에서 일본 고유의 디자인이나 정원,바위 등을 형상화해 소비자들에게 일본 전통의 가치를 제공하는 컨셉트로 재개발됐다"며 "지난해 3500만명이 다녀갈 만큼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

기존 복합몰들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테마를 찾아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 LA의 럭셔리 쇼핑몰 '패션아일랜드'는 고전적인 유럽풍 분위기를 재현하는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다. 로라 데이비스 마케팅 디렉터는 "높이 13.5m의 오벨리스크 조각상과 로마 피우미 분수를 연상시키는 분수대,고전적인 파빌리온 등으로 미국인들이 동경하는 정통 유럽식 정원을 대규모로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이 보다 편하게 쉬면서 만족할 수 있는 고품격 휴식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다.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컨셉트일수록 매출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홍콩 · 도쿄=송태형/LA=최진석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