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장기화로 추락 위기감..효과는 의문

정부가 9일 조선 및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동시에 발표한 것은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온 조선.해운업이 업종 불황을 배경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한국 조선.해운업의 부진이 근본적으로 글로벌 업계의 불황과 이에따른 유동성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정부가 지금 나서서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잡고 금융지원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중국 등 후발주자에 추월당하는 것은 물론 업계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돼 왔다.

◇ 정부 왜 조선.해운업 지원 나섰나 = 해운과 조선업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업종이다.

전자와 자동차 등이 각국 정부의 부양책에 힘입어 위기 이전 상태를 거의 회복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불황으로 국가간 교역량이 격감하면서 국제 해운업계에는 선박 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다시 원가를 밑도는 운임 급락과 출혈경쟁으로 이어졌다.

현재 국내 중소선사의 경우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총 180여개사중 22개사가 폐업하고 4개사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올 상반기 8개 국적 상장해운사의 영업이익률은 -12.1%로 곤두박질쳤고 영업적자폭도 1조2천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해운시장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발주한 선박이 많은 일부 해운사가 자금난에 빠질 경우 국내 조선.해운업계와 금융업계가 연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운 불황은 곧바로 조선업계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대 고객인 대형 해운사들이 신규 발주는 커녕 이미 발주한 물량마저 취소하거나 인도 연기를 속속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조선 강국 코리아'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은 11월 초 현재 수주잔량에서 중국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2000년 2월 일본에 앞선 이후 10년 가까이 지켜온 1위 자리를 빼앗긴 것.
한국은 연간 신규 수주 부문에서도 중국에 크게 뒤져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심각한 자금 위기에 빠진 프랑스의 CMA-CGM, 대만의 TMT, 독일의 페테르 돌레 쉬파르츠 등 글로벌 선사들이 우리 조선업체들과 맺은 기존 계약을 수정하거나 취소할 잠재적 위협마저 커지고 있어 정부로선 어떤 식으로든 위기 상황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 정부 대책 어떤 내용 담겼나 = 정부는 우선 현재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8개 부실 조선사에 대해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상시 구조조정을 지속해 추진하고 이들을 수리조선소나 블록공장 등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는 현재 국내 조선업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조선소가 난립해 있음을 인식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년전 수리 조선소로서는 유일하던 현대미포조선이 신조업체로 전환한 이후 수리조선소가 단 한 곳도 없고 이로 인해 발주 해운사로서는 애프터서비스에 불편을 겪어왔다.

이와 함께 우량 중견 조선사를 포함, 일부 업체를 세계시장 규모가 470억 달러에 달하는 해양레저장비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선박 제조업체에 대한 단기적인 유동성 지원도 크게 확대된다.

우선 수출입은행의 선박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대출 미집행액 5천억원을 선박 제작금융으로 전환해 지원키로 했다.

또 수출보험공사의 현금결제보증 조건을 완화하고, 필요한 경우 조선사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제작금융 지원한도도 상향 조정되며, 선주가 금융지원을 요청할 경우 수출입은행의 직접대출과 수출보험공사의 중장기수출보험을 함께 지원하는 패키지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선박 가격이 떨어져 추가로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 수출입은행이 담보인정비율(LTV)를 낮추고 수출입보험에서 일부 보험을 제공하는 형식을 통해 추가 담보제공액의 일정 부분을 양 기관이 분담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해운업계의 경우 선박펀드 운영을 개선하고 금융지원을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선박펀드가 선박 매입시 투자되는 구조조정기금의 비율을 60%로 높이고 건조 중인 선박도 매입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골자다.

현재 선박 매입 대금은 금융회사가 20%, 구조조정기금이 40%를 대고 나머지 40%는 5년 뒤 선박을 되사는 해운사가 이행보증금을 내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으나 기금 조성규모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순위 금융의 확보가 제한적일 경우 구조조정기금이 최대 60%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
또 현재 운항 중인 선박에 대해 지원되고 있는 선박펀드 매입대상을 건조 중인 선박까지 대상을 확대, 공정이 상당히 진행된 선박에 대해 지원을 약정해 선박 인도 후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도 상시 추진돼 유동성 우려가 있는 일부 대형업체는 계열사 정리와 선박매각 등 재무구조개선약정 등을 통해 자율적 구조조정과 자금확보를 유도하고, 일시적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는 회생가능 중소업체에 대해서는 긴급지원(Fast Track)을 활용해 구조조정과 지원을 병행키로 했다.

◇ 정부 대책 충분한가 = 정부 발표에 대한 조선업계의 반응은 다소 미온적이다.

업계 위기에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트워크 대출 규모를 축소하고 이를 선박 제작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은 국내 조선소들의 유동성을 보완해주려는 취지"라면서 "그러나 이 정도 금액이 업체들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근 글로벌 선사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주 물량의 인도를 연기할 경우 받게 될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지만 자금 규모 5천억원을 9개 회원사가 나눠갖게 될 경우 효과는 미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실 조선소를 블록공장이나 수리전환소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마련된 것"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그러나 수리조선소는 대규모 이익이 나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매출이 가능한 업종이고, 부실 조선사의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된 해양레저장비산업 역시 인프라는 미약하지만 향후 미래성장동력 분야로 꼽힐 수 있는 분야인만큼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둘 수는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해운업계는 선박펀드 운영 개선으로 중소선사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유동성 확보에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해운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 1차 지원에 이어 이번에 추가 지원이 이뤄진 것은 그만큼 해운업계가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건조 중인 선박에 대해서도 담보를 해줌으로써 유동성 확보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김태종 기자 faith@yna.co.kr